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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理知논술/명화, 생각의 캔버스]예술의 소재

입력 | 2008-05-19 03:01:00


예술의 소재는 ‘지금 여기’에 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저녁에 친구들을 불러서 함께 음식을 먹고 또 흥겹게 포도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걸 좋아했습니다. 반가운 친구와 만남을 즐기는 것은 누구에게나 기분 좋은 일이지요. 우리가 잘 아는 철학자 플라톤이 쓴 ‘대화’나 ‘향연’도 모두 이런 저녁 술자리에서 오간 내용을 기록한 것들이랍니다. 그러나 한가하고 부담 없는 술자리에 모여 앉아서 꼭 딱딱하고 재미없는 철학이야기만 나누란 법은 없습니다. 살림이야기, 농사짓는 이야기, 자녀교육 이야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와 더불어 유쾌하거나 경박스러운 농담들도 오갔을 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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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찮고 지저분한 대상들을 담은 모자이크(그림 1)와 성스럽고 위대한 대상을 소재로 한 모자이크(그림 2,3). 둘 사이의 차이점에 주목해 예술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세요.

고상하고 위대한 것들을 그려야만 아름다울까

음식쓰레기, 우리의 일상이 바로 美의 원천인것을

이 작품(그림 1)은 지금으로부터 2000여 년 전 헬레니즘 시대에 어느 저택의 식당 바닥에 깔아서 장식했던 모자이크입니다. 모자이크는 여러 가지 색의 잔돌을 떼어 붙인 미술작품을 가리키지요. 손톱만큼 작은 돌들을 붙여서 조립한 모자이크는 아무리 밟아도 더 이상 깨질 염려가 없고, 또 습기와 온도에도 강해 건축물의 안팎을 장식하는 데 그만이었답니다. 더러워지면 물청소도 할 수 있으니 금상첨화였지요.

그런데 이 모자이크 작품에는 조금 엉뚱한 구석이 있어요. 그림을 살펴보면 착실하게 발라먹은 생선뼈, 메추라기 뒷다리, 반쪽 난 성게껍질, 손으로 찢어먹다가 버린 샐러드 잎, 달팽이, 완두콩에다 생쥐까지 얼씬거리는 걸 볼 수 있어요. 이런 지저분하고 불결한 곳에 손님들을 초대해서 저녁을 먹으라니, 이만저만 불경이 아닌 셈이지요. 모르긴 몰라도 저녁 식사에 초대받은 손님들 얼굴이 잔뜩 찌푸려졌을 것 같네요. 어두운 실내를 밝히는 것은 고작 심지를 두어 개 박아놓은 올리브 등잔뿐이었을 테니, 어지간히 눈이 밝은 사람이라도 모자이크 그림이 진짜라고 생각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을 테지요.

“이런 고약한 경우를 보았나?”

“쥔장, 오늘 너무 하시네, 그려.”

궁시렁거리며 입맛을 다시던 손님들은 신고 있던 샌들로 방바닥에 흩어져 있는 생선뼈, 닭뼈 따위를 걷어차려고 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러나 바로 그 순간 손님들은 깨닫게 되지요. 이것들이 모두 진짜 쓰레기가 아니라 모자이크 작가의 아이디어에서 나온 엄연한 예술작품이라는 사실을 말이지요. 그날 초대받은 손님들은 악취 나는 소재와 자연주의 기법이 만나서 탄생한 근사한 눈속임 모자이크를 최초로 목격한 증인이 됩니다.

로마시대의 박물학자 플리니우스는 ‘박물지’에서 이 기상천외한 작품이 페르가몬의 모자이크 작가 소소스가 만든 ‘청소 안 한 방’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고 소개합니다. 이 작품은 의외로 큰 인기를 누렸고, 많은 모방 작품들이 잇달아 출현했다고 합니다. 현재 로마의 바티칸에 남아 있는 이 작품도 소소스의 원작 모자이크를 로마 시대에 비슷하게 복제한 것이지요.

그러나 세상에, ‘청소 안 한 방’이라니! 작품 못지않게 제목도 정말 어처구니없네요. 기왕에 큰 돈 들여서 예술작품으로 집안 장식을 하려고 마음먹었으면, ‘네메아의 사자를 때려잡는 늠름한 헤라클레스’나 ‘아도니스를 유혹하는 아름다운 아프로디테’ 같은 우아하고 품격 있는 소재를 고르는 편이 더 낫지 않았을까요? 그랬더라면 손님들한테 군소리나 지청구를 듣는 일도 없었을 텐데 말이지요. 그런데 굳이 예술의 간판을 걸치고 이처럼 볼품없고 냄새나는 쓰레기를 보여주어야 할 필요가 있었던 걸까요?

플라톤의 제자이기도 한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 제4장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아주 보기 흉한 동물이나 시체의 형체처럼 실물을 볼 때면 불쾌감만 주는 대상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지극히 정확하게 그려놓았을 때는 보면서 쾌감을 느낀다.”

가령 길가에 비둘기가 한 마리 죽어서 누워 있는 걸 발견하면 기분이 나빠져서 고개를 돌리게 되지만, 그것을 소재로 삼아서 훌륭한 솜씨로 그려놓은 작품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감탄을 금치 못한다는 뜻이지요. 이건 좀 극단적인 비유이기는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예술의 가치를 가늠하는 기준이 반드시 소재의 아름다움에 달려 있지 않다는 증거를 똑 부러지게 제시하려는 의도에서 죽은 동물 이야기를 끄집어낸 것 같네요.

만약 이 논의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간다면, 이것은 엉터리 화가가 그린 영웅 헤라클레스의 그림과 뛰어난 재능을 가진 화가가 그린 비둘기 그림 가운데 어느 것이 예술적으로 뛰어난지를 고르는 문제와 같다고 볼 수 있어요. 비둘기가 헤라클레스보다 더 위대해서가 아니라, 대상을 모방하고 재현하는 예술가의 솜씨에 근거해서 우리는 비둘기 그림 화가의 손을 들어주게 됩니다.

그러고 보면 모자이크 작가 소소스는 무척 대담하고 뱃심이 좋은 예술가였던 것 같아요. 아름다움이라곤 눈곱만치도 찾아볼 수 없는, 일상의 쓰레기 가운데 소재를 건져 올려서 이를 예술적으로 형상화시켰으니까요. 이는 새로운 소재의 발견이라고 할 수 있는 대단한 업적입니다. 작품 한 점을 가지고 예술에 대한 시대의 편견까지 바로잡았으니, 예술의 지평을 넓혔다고 평가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소소스는 한사코 아름다움만을 추구하는 예술가들에게 멋지게 한 방 날리고 싶었나 봅니다. 자신의 야심작 ‘청소 안 한 방’을 구상하면서, 이렇게 중얼거렸을지도 모르겠네요.

“예술은 결코 고상하거나 위대하지 않아. 진정한 예술이란 올림포스의 빛나는 황금구름 위 까마득한 이데아의 세계에 존재하는 게 아니야. 지금 여기서 우리가 끌어안고 씨름하는, 땀 냄새 사람냄새 물씬 풍기는 현실이야말로 예술의 가장 진실한 거울이지.”

노성두 서양미술사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