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세라티의 스포츠 세단 ‘콰트로포르테’ 타고 화천으로
《마세라티(Maserati). 이탈리아 자동차를 상징하는 슈퍼 카 반열에 페라리, 알파로메오 등과 함께 나란히 오르는 이 슈퍼 스포츠카(4인승)의 키를 쥐는 순간. 가벼운 흥분이 몸을 긴장시켰다. 뒤로 가며 날렵하게 가라앉는 지붕 선에서는 쿠페의 스포티함이, 우아하게 돌출한 앞부분에서는 고전적 선율이, 범퍼 좌우에 한 쌍씩 심어진 네 개의 테일 파이프에서는 400마력의 강력한 파워가 느껴졌다. 바로 2003년 데뷔한 슈퍼 카 마세라티의 럭셔리 스포츠 세단 ‘콰트로포르테’(Quattroporte)였다. 》
마세라티가 태어난 곳은 북부의 볼로냐, 그 차를 개발한 이는 여기서 멀지 않은 보그헤라의 마세라티 형제다. 철도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난 일곱 형제인 그들은 생후 1년 만에 숨진 셋째와 미술에 관심이 많던 다섯째만 빼고 넷째 알피에리를 중심으로 다섯이 똘똘 뭉쳐 무적의 경주 차 마세라티를 만들었다. 물론 다섯째 마리오도 마세라티의 엠블럼인 넵튠(바다의 신)의 삼지창(트라이던트)을 디자인(1926년)해 그 역사에 동참했다.
마세라티의 얼굴, 삼지창을 보자. 왜 하필이면 삼지창일까. 삼지창은 볼로냐 시의 상징이다. 볼로냐는 마세라티 신화를 만들어낸 곳이자 형제의 꿈이 서린 곳. 그 볼로냐도 마세라티를 아끼는 심정만은 다르지 않다. ‘비아 마세라티’라는 길 이름이 그 증거다. 현재의 모데나로 이전한 것은 1948년. 볼로냐를 떠나며 마세라티 가문도 손을 뗐다. 그러나 손으로 제작하는 것만큼은 여전하다. 엔진만큼은 페라리 공장에서 생산한 것을 쓰지만.
운전석에 앉았다. 도도한 귀공자를 연상시키는 검은색 차체처럼 온통 블랙 가죽 일색의 실내는 파리 리츠호텔의 스위트룸 거실만큼이나 고급스럽고 화려하다. 가죽 다루는 솜씨로는 세계 최고라는 이탈리아 장인의 손길이 시트 가장자리의 바느질에서도 느껴진다. 실 색상까지 선택할 수 있는 것이야말로 수공 차의 진수다.
시동키를 돌렸다. 낮고 부드러운 허밍 음이 들려왔다. 가속페달을 밟자 순식간에 고양이과 동물의 날카로운 포효 음으로 바뀌며 음정이 치솟는다.
이 차의 생산지는 모데나, 위대한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고향이다. 그가 부른 노래 중 최고는 역시 오페라 ‘투란도트’의 ‘공주는 잠 못 이루고’다. 그러나 그를 ‘하이C(3옥타브의 도 음)의 제왕’이란 찬사와 함께 세계적인 테너로 등극시킨 노래는 도니제티의 오페라 ‘연대의 딸’ 중 ‘친구들이여, 오늘은 즐거운 날’이다. 콰트로포르테의 그 치솟는 고음의 엔진음에서 파바로티를 추억하는 것이 우연만은 아닐 터이다.
이제 남은 일은 이 무시무시한 슈퍼 스포츠카를 모는 일. 그것은 단순한 드라이빙이 아니다. 1926년 최초로 마세라티 엠블럼을 달고 출전한 이후 100개 대회를 석권한 전설의 경주 차 ‘티포 26’의 내제된 전설을 가늠해 보자는 섣부른 욕심도 감춰져 있었다.
목적지는 강원 화천군의 평화의 댐. 자유로를 따라 한강을 벗해 문산으로 간 뒤 임진강을 따라 연천, 이어 한탄강을 끼고 철원에 가서 말고개를 넘어 북한강 흐르는 화천의 평화의 댐까지 가는 색다른 루트다. 굳이 이곳을 선택한 이유는 마지막 22km 구간 때문. ‘아흔아홉 구비’의 이 고갯길이야말로 콰트로포르테의 성능을 제대로 보여줄 것 같아서였다.
그 예상은 적중했다. 콰트로포르테가 보여준 놀라운 퍼포먼스는 슈퍼카란 무엇인지를 가르쳐주는 좋은 레슨이었다. 그 성능은 특히 코너링에서 돋보였다. 시속 140km 이상에서도 차체는 정숙했고 쉴 새 없이 오르내리는 6단 자동기어 변속과정도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가속페달 조작에 대응하도록 설계된 첨단 지형반응 시스템과 서스펜션 덕분인데 네 바퀴의 회전과 차체 높낮이가 엔진 회전에 따라 동시에 제어된다. 스포츠 모드로 바꾸면 더더욱 그 성능을 실감한다.
귀경 코스는 내내 북한강을 벗해 강과 호수를 섭렵하는 수변 드라이브 루트. 평화의 댐은 북한 금강산댐의 물막이로 바닥을 드러냈어도 그 아래 파로호(화천댐)와 춘천댐, 의암호(의암댐), 청평호(청평댐)는 물로 가득 차 5월 푸른 하늘 아래 멋진 풍광을 선사한다.
그 길로 달리는 도중 또 한 가지 사실에 놀랐다. 이 희귀한 차를 알아보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이었다. 지나는 사람마다, 차량의 운전자마다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모습. 덕분에 우쭐해지는 기분도 들었다. 명품을 소유한다는 것. 거기에는 이런 느낌도 포함될 것이다. 그런데 아뿔싸, 문제가 생겼다. 디젤엔진의 내 차 시동을 거는 순간. 부드럽게만 들리던 엔진 소리가 왜 오늘은 경운기 소음으로 들리는 건지….
글·사진(화천)=조성하 전문기자 summ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