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엔진’ 박지성(27·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 아시아 축구사를 새로 쓴다.
22일 오전 3시 45분(한국 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첼시와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 바로 그 무대. 박지성은 한국 최초의 프리미어리거로서 아시아 최초로 유럽 최고의 꿈의 무대 출전을 눈앞에 두고 있다. 우승하는 팀은 3993만 유로(약 648억 원)의 우승 배당금(지난해 기준)을 받는다. 물론 팀이 받는 돈이지만 선수들에게 나눠준다면 1인당 36억 원에 이르는 큰 금액이다. 이날 경기는 30초 광고가 20만 파운드(약 4억 원)에 팔릴 정도로 큰 관심을 끌고 있다.》
박지성 vs 에시엔
알렉스 퍼거슨 맨체스터 감독의 최근 선수 선발 경향과 영국 언론 보도에 따르면 박지성의 선발 출전이 유력하다. 모스크바에 도착한 24명 중 18명만이 최종 엔트리에 들지만 더 타임스 등 영국 언론은 FC 바르셀로나와 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까지 4경기 연속 풀타임으로 뛰었던 박지성의 선발 출전을 예상하고 있다. 선발 출전으로 그라운드를 밟는다면 아시아 선수로는 최초다. 1998∼1999시즌 이란의 알리 다에이는 독일 바이에른 뮌헨 시절 맨체스터와 챔피언스리그 결승(맨체스터 2-1 승) 엔트리에 올랐지만 벤치만 지켰다. 박지성은 왼쪽 공격수로 기용될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첼시의 오른쪽 수비수 마이클 에시엔과의 맞대결이 예상된다. 박지성은 에시엔을 첼시 미드필더 미하엘 발라크와 함께 가장 경계해야 할 선수로 꼽았다. 박지성이 ‘맨체스터의 엔진’이라면 에시엔은 ‘첼시의 엔진’이다. 체력, 정신력과 성실함 등 모든 면에서 최고의 팀 공헌도를 자랑한다는 점이 박지성과 똑닮았다.
퍼거슨 vs 그란트
두 감독은 여러모로 대조적이다. 명성에서 맨체스터의 퍼거슨 감독은 이스라엘 출신의 아브람 그란트 첼시 감독을 압도한다. 1986년 맨체스터를 맡아 리그 10회, FA컵 5회 우승을 거머쥔 명장 중의 명장이다. 프리미어리그 올해의 감독도 7회나 수상했다. 반면 그란트 감독은 지난해 9월 조제 모리뉴 감독이 떠난 뒤 얼떨결에 팀을 맡았고 초반 이렇다 할 성과를 보여주지 못해 실망감을 안겨줬다. 감독을 잘못 뽑았다는 비판도 들어야 했다. 하지만 승리에 대한 욕심은 두 감독이 비슷하다. 퍼거슨 감독은 챔피언스리그에서 단 한번 우승했다. 1998∼1999시즌이었으니 오래됐다. 우승에 갈증이 날 만하다. 그동안 비판에 시달렸던 그란트 감독으로선 명예를 회복하는 동시에 팀에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기 위한 절호의 기회다. 또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하면 잉글랜드에서뿐만 아니라 유럽 전체에 자신의 이름을 확실히 알릴 수 있게 된다.
호날두 vs 발라크
그야말로 별들의 전쟁이다. 맨체스터에는 정규리그에서만 31골을 터뜨리며 득점왕에 오른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비롯해 웨인 루니, 카를로스 테베스, 라이언 긱스 등 스타플레이어가 즐비하다.
첼시에는 ‘검은 폭격기’ 디디에 드로그바, 대포알 슛을 장착한 미드필더 미하엘 발라크, 존 테리, 프랭크 램퍼드, 에시엔 등이 버티고 있다. 전문가들은 선수 면면만 보면 어느 팀이 승리할지 점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말한다.
한편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를 대표하는 두 팀이 맞붙는 경기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미국과 러시아의 대리전 양상이다. 구단주가 각각 미국과 러시아인이기 때문이다.
맨체스터는 2005년 미국의 스포츠 재벌 맬컴 글레이저가 인수했고 첼시는 2003년 러시아의 석유 재벌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인수했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