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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속의 오늘]1930년 ‘열사’ 장인환 잠들다

입력 | 2008-05-22 02:55:00


1908년 3월 20일, 일제 조선통감부의 외교 고문인 미국인 스티븐스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다. 일제의 조선 침략을 정당화하는 선전 활동을 하기 위해서였다.

스티븐스는 도착 즉시 ‘일본의 한국 지배는 한국에 유익하다’는 제목의 친일성명서를 발표했다. 이 같은 사실이 전해지자 샌프란시스코의 한국인들은 일제히 분개했다. 한국인들은 스티븐스를 찾아가 성명서 내용을 정정할 것을 요구했다. 스티븐스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한국인들 가운데엔 서른두 살의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스티븐스를 죽이기로 마음먹었다.

장인환. 1876년 평양에서 출생한 그는 어려서 부모를 여의었고 가난 때문에 학업을 포기해야 했다. 그는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1905년 하와이행 배에 몸을 실었다. 하와이의 사탕수수농장에서 일하던 그는 이듬해엔 미국 본토로 들어가 철도노무자, 알래스카 어장 노무자 등으로 생계를 이어갔다.

하루하루 힘겨운 날들이었지만 조국 독립에 대한 장인환의 열망은 대단했다. 미주 한인들의 독립운동단체인 대동보국회에 들어가 기울어가는 국운을 다시 세우고자 했다.

1908년 3월 23일 오전 9시 반 샌프란시스코 페리 선창. 스티븐스가 모습을 나타내자 장인환은 그를 향해 총을 겨눴다. 그때 한 남자가 뛰어나와 권총을 손에 쥔 채 스티븐스를 향해 돌진했다. 그 남자는 전명운이었다. 장인환에 앞서 스티븐스를 향해 총을 발사했으나 불발되자 직접 달려가 스티븐스와 격투를 벌였다. 그 격투의 와중에 장인환은 스티븐스에게 권총을 발사했다. 명중이었고, 스티븐스는 이틀 뒤 목숨을 잃었다.

장인환은 25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예의바른 품행으로 10년 만에 출옥했다. 1927년 조만식 등의 환영을 받으며 귀국한 장인환은 다시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돌아갔다. 하지만 또다시 찾아온 가난과 병고에 시달리다 1930년 5월 22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국땅에서 조국의 독립을 갈망하다 쓸쓸히 생을 마감한 장인환. 그는 스티븐스 사살 직후 자신의 거사 동기를 이렇게 밝혔다.

“우리나라는 일본의 보호정치 이래 완전 파멸상태이다. 스티븐스는 일본을 도와 한국 복멸(覆滅) 계획을 수립했다…인생이란 무엇인가. 사람은 누구나 죽을 줄 알아야 한다. 만약 내가 스티븐스를 죽이고 나도 죽는다면, 그것은 우리나라의 영광이요, 우리 국민의 행복이 될 것이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