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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강남에 온 밀라노

입력 | 2008-05-23 02:55:00


《이루 말할 수 없이 반가웠다.

세계적 복합 문화공간인 ‘10(텐) 꼬르소 꼬모’가 3월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문을 열었다.

10 꼬르소 꼬모가 어떤 곳이던가. 이탈리아 패션잡지 기자 출신의 카를라 소차니(61)가 1991년 밀라노에 문을 연 콘셉트 스토어다.

운영자의 취향과 콘셉트에 따라 여러 물건들을 한데 갖춰놓고 파는 곳이다.

금발을 차분하게 내려 묶은 소차니는 20여 년간 패션계에 종사한 안목으로 이 공간에 담는 패션, 음악, 미술, 서적, 음식 등을 하나하나 직접 정한다.

수많은 브랜드가 ‘간택’돼 있지만 결국 모든 제품은 ‘10 꼬르소 꼬모’라는 라벨을 달고 있다. 방문객들은 마치 액자 소설처럼 소차니가 고른 물건들을 통해 문화를 향유한다.

제일모직이 이번에 서울에 들여온 10 꼬르소 꼬모는 이탈리아 본점의 사실상 해외 첫 매장이다.

일본 도쿄에도 매장이 있지만 패션 브랜드인 콤데가르송과 협업한 것이어서 10 꼬르소 꼬모의 100% 오리지널리티를 갖춘 해외 매장은 서울이 처음이다.

서울에는 복합 문화공간이 또 있다. 2006년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모습을 드러낸 ‘메종 에르메스 도산파크’다. 파리, 뉴욕, 도쿄에 이은 에르메스의 네 번째 단독 매장이다.

부티크를 비롯해 카페, 박물관, 아틀리에 등을 갖춰 이 브랜드 마니아들에겐 원스톱 라이프스타일 공간인 셈이다. 고가(高價)인 에르메스 매장이어서 방문하기에 왠지 부담스러운 측면도 있지만 일단 발을 들여놓으면 건물 전체에서 신선하게 문화를 체험하게 된다.

서울은 글로벌 브랜드들이 눈독을 들이는 ‘코스모폴리탄 시티’다.

트렌디한 외국 도시들을 다녀오는 것처럼 서울의 복합 문화공간들을 호젓하게 여행하면 어떨까.

프랑스 작가 알랭 드 보통이 “여행은 생각의 산파”라고 했으므로.》

伊 패션-문화명품 모은 ‘콘셉트 스토어’ 그대로 옮겨와

10 꼬르소 꼬모 방문기를 지상 중계한다.

우선 남성 코너는 남성의 패션 세계가 얼마나 다채로울 수 있는지 보여준다.

국내에는 생소한 프랑스 수제 맞춤 브랜드 ‘샤르베’의 나비넥타이들을 보자마자 저절로 “야아” 감탄사가 나오고 말았다. 회색 물방울 보라색 나비, 파란 꽃무늬의 붉은색 나비…. 러플이 달린 로맨틱한 흰색 남성 턱시도 셔츠에 살포시 내려앉을 형형색색 나비들을 보고 있자니 마냥 즐거워졌다. 얼마 전 어버이날 선물을 위해 국내 백화점에서 나비넥타이를 애타고 힘들게 찾아 헤맸던 기억도 떠올랐다.

사실 한국 남성들은 턱시도를 입는 결혼식 때 빼고는 나비넥타이를 맬 일이 거의 없을뿐더러, 막연히 어려워한다. 하지만 이런 튀는 아이템일수록 그 자체만으로도 강렬한 힘을 내뿜는다. 나비넥타이는 여성에게도 훌륭한 액세서리가 될 수 있다. 어차피 패션은 창조적 도전이니까. 헐렁한 티셔츠에 정장 바지 또는 발레리나 치마를 입고 나비넥타이를 목에 둘러주면 패션 화보의 주인공처럼 시크해 보일 것이다. 깨끗한 흰색 셔츠에 은은한 회색 나비넥타이의 나비매듭을 짓지 말고 길게 스카프처럼 늘어뜨려도 세련돼 보인다.


▲ 영상취재: 동아일보 사진부 박영대 기자

명품과 예술의 공존 ‘에르메스’

이곳은 요즘 유럽과 미국, 일본 등지에서 ‘뜨고’ 있는 패션의 집합소다.

월계수 문양이 가슴에 놓인 ‘프레드 페리’와 악어 문양의 ‘라코스떼’ 피케셔츠에 ‘마크 제이콥스’ 면 재킷을 매치하면 편안하면서도 감각 있는 남성 스타일이 완성된다.

파리지앵 분위기를 내고 싶다면 프랑스 브랜드 ‘A.P.C’의 검은색 면 트렌치코트, 유머러스한 캐주얼을 추구한다면 일본 작가 나라 요시토모의 그림이 프린트된 ‘2K by 깅엄’ 티셔츠와 트럭 덮개 재활용 소재로 알록달록 만들어져 인기가 급부상하고 있는 스위스 ‘프라이타크’ 가방을 권한다. ‘테크노짐’의 덤벨 세트와 ‘셀레티’의 갈색 가죽 복싱 장갑 등 운동 용품도 패셔너블하다.

○ 예술과 빈티지, 첨단 트렌드의 공존

남성 코너에서 계단을 한 층 오르면 갤러리가 나온다. 현재는 색채 사진으로 유명한 프랑코 폰타나의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자연과 도시가 추상화처럼 사진으로 포착돼 있다. 10 꼬르소 꼬모에선 현대미술의 블루칩으로 떠오른 사진 예술을 쇼핑 도중 자연스럽게 접하게 된다.

남성 코너에는 댄디한 신사 차림을 만들어줄 페도라 중절모가 고(故) 앵거스 맥빈의 흑백 사진들 앞에 진열돼 있다. 초현실주의 사진작가인 맥빈은 1930년대 연극 소품을 만들면서 명성을 얻기 시작해 비비언 리 등 당대 여배우들의 인물 사진을 주로 찍었다.

이탈리아 ‘베니니’ 수공예 유리 화병과 ‘포르나세티’의 접시들은 예술품 수준의 디자인 제품이다.

친절하게도 각각의 상품 옆에는 디자이너 또는 해당 브랜드 관련 책도 함께 진열돼 판매된다. 세로로 쌓으면 앤디 워홀의 메릴린 먼로 얼굴이 완성되는 ‘로젠탈’의 머그잔 세트는 집들이 선물로 센스 만점일 것 같았다.

10 꼬르소 꼬모는 ‘슬로 쇼핑’을 내건다. 패션과 디자인 숍에서 쇼핑하다가 갤러리에서 그림을 감상하고 서점에서 희귀한 예술 서적을 뒤적일 수도 있다.

그러다 지치면 정원이 있는 카페에서 티라미수 케이크와 커피를 즐기며 쉬면 된다. 어느덧 반나절은 훌쩍 지나간다.

1000여 권의 예술서적, 각종 월드 뮤직과 재즈 음반이 구비된 서적코너는 매일 들르고 싶은 곳이다. 한없이 우아한 프랑스 패션브랜드 ‘랑방’의 화보집은 한 장 한 장 넘기는 게 가슴 설렐 정도다. 헬무트 뉴턴 사진집과 10 꼬르소 꼬모가 자체 기획한 편집음악 앨범 ‘러브’는 이곳의 인기 아이템이다.

여성스러운 디자인의 ‘미우미우’ 원피스, 여배우 시에나 밀러 자매가 만든 ‘트웬티 8 트웰브’의 블라우스, 허리선을 높게 끌어올린 ‘MIH’ 청바지 등 여성 코너엔 요즘 유행하는 패션이 넘쳐난다.

하지만 이곳의 진수는 빈티지 컬렉션일 듯하다. 프랑스의 저명한 빈티지 컬렉터인 디디에 루도가 내놓은 1960년대 에르메스 캘리백과 블랙 미니 드레스 등 박물관 진열품 같은 빈티지 제품들은 프렌치 스타일의 매력을 한껏 발산하고 있다.

몰티즈 등 각종 동물 모양의 ‘지안나 로즈 아틀리에’ 비누, 남성을 유혹하는 섹시한 향기를 지녔다는 ‘아정 프로보카토’ 향수는 선물용 또는 은밀한 자기 만족을 위해 추천할 만하다.

‘메종 에르메스 도산파크’의 ‘메종’은 프랑스어로 집이란 뜻인데 이곳은 정말로 집 같다.

난초와 말이 그려진 접시들, 정원 가꾸기를 위한 호미 도구, 골프 티 박스, 시가 커터, 바느질 도구 세트, 배나무 책상과 의자…. 손때가 묻을 만큼 애용하다가 대대로 물려주고 싶은 그런 물건들이다. ‘에르메스 키즈’의 삶은 또 어떨까. 아기용 가죽 슈즈와 질감 좋은 어린이 니트웨어는 이 브랜드 충성도가 높은 고객들이 주로 사지만 앙증맞으면서도 품위 있는 디자인 때문에 선물용으로도 잘 팔린다.

승마와 각종 예술 서적 300여 권을 갖춘 지하 카페의 이름은 아예 ‘마당’이다. 건물 가운데가 뻥 뚫려 앞마당처럼 꾸며져 있다. 책을 읽기 편하게 테이블 조명을 갖춘 인테리어의 세심한 배려도 돋보인다. 와규 등심 등 신라호텔에서 운영하는 음식 맛도 일품이지만 점잖은 분위기 때문에 요즘 맞선 장소로도 인기다.

지하 박물관과 3층 아틀리에는 에르메스의 역사와 숨결이 살아 숨쉬는 곳이다. 박물관 초입에는 이 브랜드의 기원이자 상징인 마구와 마차 등을 새긴 19세기 동판, 노르웨이 숲을 연상시키는 모던한 내부엔 17, 18세기 극장용 망원경과 사냥용품 등이 시대를 초월해 가만히 말을 걸어오는 듯하다. 영국의 젊은 조각가 게리 웹의 전시가 열리고 있는 아틀리에에는 학생들의 견학이 끊이지 않는다.

에르메스는 세계 곳곳에서 활발하게 문화 활동을 전개한다. 지난해 파리에서는 비디오 아트, 상하이에서는 실크를 소재로 한 현대무용 행사를 펼쳤다. 10 꼬르소 꼬모와 메종 에르메스 도산파크를 다녀온 사람들은 말한다.

“서울에 생긴 10 꼬르소 꼬모는 밀라노보다 예술적 색채가 더 강한 것 같아요. 서울에 살고 있다는 것이 자랑스러워졌어요.”(우희원 갤러리아백화점 바이어)

“이들 공간이 꼭 성공해서 복합 문화공간이 더욱 늘었으면 해요. 문화를 소비하는 건 흥미롭고도 고급스러운 체험이니까요.”(윤순근 크리스찬 디오르 부장)

글=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사진=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지면 디자인=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