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 15세의 정부를 그린 프랑수아 부셰의 ‘퐁파두르 부인’. 사진 제공 미술문화
◇ 샤넬, 미술관에 가다 / 김홍기 지음 /336쪽·1만7000원·미술문화
풍성한 검은색 드레스 위에 걸쳐진 빨간 방울 장식이 달린 깜찍한 볼레로, 허전한 목을 감싸며 망토의 모피 트리밍과 조화를 이루는 부드러운 모피 초커, 흰색 반팔 모슬린 드레스에 어울리는 하얀 백조털 목도리와 황갈색 양가죽 장갑….
유행의 첨단을 걷는 ‘패셔니스타’의 옷장 속이나 파리 오트 쿠튀르(고급 맞춤복) 런웨이에서 볼 수 있을 것 같은 이 패션의 출처는 ‘미술관’이다. 패션 관련 인기 블로거인 저자는 미술관에서 만나는 그림들을 미술사적으로 감상하는 대신 그림 속 인물의 패션에 포커스를 맞췄다. 한마디로 이 책은 ‘미술을 통해 읽는 패션이야기’다.
이 책은 주로 17∼19세기의 그림에서 패션을 뽑아냈다. 수많은 현대 디자이너가 중세의 복식에서 영감을 얻고, 패션은 원래 돌고 도는 것이라지만 책을 읽다 보면 200∼300년 전의 의상이며 액세서리가 21세기에도 여전히 살아 있다는 사실이 새삼 흥미롭다.
루이 15세의 정부를 그린 프랑수아 부셰의 ‘퐁파두르 부인’. 퐁파두르는 로코코 시대의 패션 리더였다. 가슴을 장식한 핑크색 레이스리본과 색을 맞춘 하이힐이 그림 속에 살짝 엿보인다. ‘레이디 뮤즈’라 불렸던 19세기 런던 사교계 여인. 제임스 휘슬러가 그린 그녀의 모습은 지금 아카데미 시상식 레드 카펫 위에 그대로 옮겨다 놔도 손색이 없을 만큼 현대적이다.
빅토리아 시대 상중(喪中) 여인이 착용한 보석 박힌 오닉스 십자가 장신구나 장 베로가 그린 ‘파리 여인’에서 세련되게 차려입은 젊은 여성의 수제 자수 처리된 롱부츠는 요즘 여성들도 탐낼 만하다.
또 그림 속에 나타난 예비 엄마의 패션, 아동복 패션, 차 마실 때 입던 티 가운, 상복 패션 등 주제별로 의상을 바라보기도 했다.
패션과 그림을 접목해 접근한 기획이 돋보이는 책. 깊이 있는 체계적인 분석은 없지만 150장에 가까운 그림 속에 등장하는 패션을 구체적으로 짚어가며 설명해 쉽고 재미있게 읽힌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초상화를 보면서 프랑스 혁명기에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그녀의 비극적인 삶을 떠올리기보다 그녀의 드레스 소재와 보석들에 먼저 눈길이 가는 ‘패셔니스타’라면 읽어볼 만한 책이다.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