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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주영의 그림 읽기]꽃이 아름다운 것은…

입력 | 2008-05-24 03:01:00


꽃이 아름다운 것은 자기희생의 미학 때문입니다

최근에 알게 된 어떤 화백으로부터 유화 한 폭을 선물 받았습니다. 배달까지 해준 그림을 비위 좋게 넙죽 받아 게걸스럽게 포장지를 뜯었습니다. 액자 속에는 수선화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그림을 보내준 화백의 평소 인상처럼 꽃 그림은 매우 청순하고 영롱했습니다.

그 화백은 평소에 입는 옷에도 꽃 그림을 염색할 만치 꽃에 열중해 있습니다. 자신의 예술적 열정과 역량이 오직 꽃의 이미지를 탐구하고 형상화시키는 데 있는 것 같았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화가들 중에는 꽃만 그리고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미 돌아가신 분입니다만, 내가 존경했었던 시인 한 분은 버스를 타고 여행을 하다가도 길가에 피어 있는 코스모스를 발견하면 무작정 버스를 세우고 내려섭니다. 그리고 길가에 피어서 먼지를 뒤집어쓴 코스모스 앞에서 서럽게 울곤 하였습니다.

김춘수 선생의 시는 대부분이 꽃을 주제로 하고 있습니다. 시와 소설, 회화 그리고 디자인과 음악을 포함한 모든 예술 활동의 근저에는 꽃이 가지고 있는 무궁무진하고 다양한 이미지를 원용하고 해석하는 데 주저함이 없습니다.

아름답다는 것을 얘기해야 할 적에 꽃을 제외한다면 그 말의 구성 자체의 의미조차 잃어버리기 십상입니다. 엄마의 젖꼭지를 빨며 옹알이를 하고 있는 젖먹이보다, 빼어난 미모를 자랑하는 매혹적인 여성보다 더 아름답다고 말하는 꽃에는 정녕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요. 한 화가가 보내 준 그림 한 폭이 상상력도 통찰력도 고갈된 나에게는 과부하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화두를 던져준 셈입니다.

꽃은 분명 시각적 황홀감 이상의 진정성이 깃든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꽃에서는 노출에 대한 수치심을 읽을 수 없습니다. 자신의 모습을 거짓 없이 있는 그대로 드러냄으로써 거짓과 야만, 변덕과 권태, 조롱과 증오가 매복할 수 있는 자리를 소멸시켜 버렸습니다.

꽃에는 보여주고 있는 이상의 숨은 그림이 없다는 것에서 오히려 꽃의 숨어있는 아름다움이 존재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결실을 위한 자기희생을 예고하고 있으면서도 결코 우울해하거나 눈물 흘리지 않는다는 것이 꽃이 가진 우람한 미학일 테지요.

가슴 울리는 감동의 진정성도 꽃이 존재함으로 가능해졌습니다. 꽃만치 생명이 아름답다는 것을 뽐낼 수 있는 유기체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꽃이 존재함으로써 우리는 삭막하고 저급한 비운의 인생을 살지 않아도 될 기막힌 행운을 가지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