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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칼럼/정승혜]무한도전과 무모한 도전

입력 | 2008-05-24 03:01:00


손수제작물(UCC) 동영상 하나로 폭발적인 인기와 함께 한 방에 스타가 된 일반인의 이야기가 이제는 흔한 뉴스거리가 됐다. 멍석도 본인이 깔고 재주도 알아서 넘는 이른바 무한경쟁 시대인 것이다. 장롱에 감춰둔 온 국민의 개인기를 텔레비전 앞으로 끌어내는 일반인 출연의 묘기대행진 ‘스타킹’은 딱 그런 눈높이를 채워주고 독특한 즐거움을 주는 가족용 주말 오락프로그램이다.

평범한 사람들의 특별한 세상을 들여다보는 묘미가 있어 즐겨 보는 편이다. 일반인을 상대로 진심을 끌어내는 강호동의 매끈하고 탁월한 진행 능력도 편안하고 주로 박수를 받던 연예인 패널들이 출연자를 향해 박수를 쳐 주는 방식 또한 신선하다.

수많은 케이블 채널 속에서도 일반인의 끊임없는 도전정신을 내세운 스타 만들기 프로젝트들이 매주 눈물과 웃음을 골고루 나눠준다. 인터넷에서 40여 명의 성대모사로 화제가 됐던 안윤상은 결국 ‘개그콘서트’에서 ‘버퍼링스’라는 코너를 맡은 개그맨이 됐다. ‘진실게임’에 출연했던 억대 소녀가 검색어에서 높은 순위를 차지한 사업가 겸 화제의 인물인 것도 재밌는 일이다.

스타킹에 출연한 사람들의 특징은 대단한 기인은 아니지만 볼수록 친근한 주변인들의 잔치여서 매번 즐겁다. 모래로 신비한 그림을 그리는 외국인 화가, 재활용품 악기로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들, 리샤오룽을 능가하는 무술 소년, 앙증맞은 댄스 신동 등은 기네스북에는 오르지 못했지만 이 프로에서만큼은 최고의 박수를 받는 실력자로 인정받았다. 대단한 실력자는 아니지만 간단하고 사랑스러운 재주로 출연하는 코너인 ‘딸랑 이거’에서는 ‘혀로 휴대전화 문자보내기’ ‘코로 노래하기’ ‘얼굴 피부 늘이기’ 등으로 메인 출연자들보다 더 큰 웃음과 박수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가끔은 웃음의 수위를 넘는 순간도 있다. 맹목적으로 음식을 먹는 딸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눈물을 보면서 안타까웠고 입 안에 주먹을 넣고 입이 크다는 자랑을 하는 고교생들을 보면서는 일순간 민망해진다.

바로 얼마 전엔 망토를 두른 10세 안팎의 귀엽고 수줍은 형제가 손을 잡고 무대에 섰다. 제자리에서 열 바퀴쯤 빙글빙글 돈 다음 평균대에서 똑바로 걷는 것이 형제가 준비한 묘기였다. 형은 진지한 얼굴로 겨우 통과했고 아우는 많이 어지러웠던지 중심을 못 잡고 아래로 떨어졌다. 사회자는 웃음 반 우려 반의 얼굴로 “솔직히 말해 봐… 너 지금 어지럽지?”라고 물었고 꼬마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텔레비전 출연이 뭐라고 하얗게 얼굴이 질려가며 도는 연습을 했을 아이의 모습을 상상하니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가끔 그렇게 무리하게 급조된 재주를 가지고 혼란스러운 얼굴로 카메라 앞에 서는 어린이들이 종종 있는데 그럴 때마다 드는 생각은 답답함이다. 특별한 재주는 없고 텔레비전엔 꼭 나가고 싶었던 꼬마들의 열망이 컸던 건지 어른들의 욕망인지 알 수는 없다. 오로지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라는 의도로만 쇼가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전 국민이 엔터테이너로 나서고, 원하기만 한다면 이들이 참여할 프로그램은 여기저기 차고 넘쳐난다. 아무리 방송에서 원하는 웃음이 날 것 같은 싱싱함이라 할지라도 수위 조절만큼은 분명 필요하다. 처음엔 화제로 시선을 집중할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생기는 식상함과 거기에 따르는 강박 때문에 초반 의도에서 빗나가기 마련이다. 무한한 도전과 무모한 도전의 차이를 알아야만 참여자도 수용자도 편안하고 유쾌하게 즐길 수 있다. 일반인 참여 프로그램의 위험한 재미가 현명한 도전자의 유쾌한 참여를 통해 그 명맥을 즐겁게 유지하길 기대한다.

정승혜 영화사 아침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