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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속의 오늘]1994년 부모 살해 ‘박한상 사건’

입력 | 2008-05-26 02:57:00


“유학 비용으로 보내주신 돈을 도박으로 탕진하고 빚까지 져 아버님으로부터 심한 꾸지람을 들었다. 13일 귀국 후 ‘호적을 파 가라’ ‘너는 아무 일도 못하는 놈이다’라는 말을 자주 해 감정이 쌓여 있었다. 부모만 없으면 재산을 차지할 수 있다는 생각에 범행을 저질렀다.”

1994년 5월 19일 0시 10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집 안방에서 부모가 잠든 것을 확인한 큰아들 박한상(당시 23세). 그는 옷을 모두 벗은 뒤 등산용 칼을 들고 들어가 아버지와 어머니를 수십 차례 찔러 무자비하게 살해했다. 그리고 방에 불을 질렀다. 한약업을 하는 부모의 100억 원대 재산을 가로챌 생각이었다.

그를 ‘패륜(悖倫) 범죄’의 구렁텅이로 몰고 간 것은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미국 유학생활이었다. ‘부잣집 아들’ 박한상은 한 지방 대학 재학 중이던 1993년 8월 부모를 졸라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근교 한 어학원에 8개월 과정 영어연수 프로그램을 등록했지만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준비 안 된 유학이었기 때문이다. 어학원에 나가는 대신 아파트에 틀어박혀 폭력 비디오를 즐겼다. 학교 주변 도박장에서 심심풀이로 포커와 블랙잭을 하다가 라스베이거스까지 원정도박을 갔다. 도박장에서 2만3000달러(당시 기준으로 약 2000만 원)를 잃었다. 그래도 손을 떼지 못했다. 아버지를 졸라 타낸 승용차 구입비 1만8000달러마저 도박으로 날렸다. 돈이 더 필요하자 몰래 귀국해 은행에서 신용카드를 만들었다. 그러곤 사채업자에게 ‘카드 깡’해서 받은 200여만 원을 호텔나이트클럽에서 썼다.

그는 완전 범죄를 꿈꿨다. 물증을 잡지 못한 초기엔 경찰 수사가 미궁에 빠질 뻔했다. 하지만 그의 팔목 화상을 치료한 서울 강남 병원의 한 간호사가 “얼굴과 머리카락에 피가 묻어 있었다”고 한 제보는 결정적이었다.

경찰이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감정 결과와 정황 증거를 들이대자 그는 5월 26일 새벽 범행 일체를 자백하고 눈물을 흘렸다.

서울고등법원은 1995년 4월 공주치료감호소에 박한상의 정신감정을 의뢰한 결과 정상으로 판정됐다. 1심과 2심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그는 무죄를 주장하며 대법원에 상고했다. 대법원은 사형을 선고한 원심을 1995년 8월 25일 확정했지만 아직 사형은 집행되지 않았다.

최영해 기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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