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브랜드에 내주고… 디자인 베끼기로 까먹고
롯데백화점은 올해부터 백화점 입점 여부를 평가하는 정기품평회를 없앴다. 1년에 두 차례 열었던 품평회 대신 담당 상품기획자(MD)가 수시로 입점브랜드를 선정하는 방식으로 바꿨다.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패션 트렌드를 반영하기 위해 1년에 두 차례 품평회를 해서는 부족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또 나이가 많은 임원들의 판단보다는 현장 실무자들의 안목이 좀 더 낫다고 판단해 입점브랜드 선정 권한을 하부로 위양했다.
정기품평회를 없앤 후 가장 바빠진 부서는 영 캐주얼팀이다. 영 캐주얼은 패션 트렌드를 가장 빨리 반영하는 제품군이다.
이 백화점 영 캐주얼 담당 정종견 과장은 “최근 5년간 새롭게 론칭하는 영 캐주얼 브랜드 수가 매년 20%씩 줄고 있다”며 “경쟁점포와 차별화하기 위해 독특한 디자인의 브랜드를 찾고 있지만 쉽지 않다”고 말했다.
국내 여성복 시장의 절반을 차지하는 영 캐주얼 시장이 요즘 맥을 못 추고 있다. 지난해 백화점 패션 부문에서 유일하게 매출이 늘지 않은 분야가 영 캐주얼이다.
패션업계에서는 최근 영 캐주얼 부진은 브랜드 간에 서로 따라 하는 ‘미 투(Me Too)’ 디자인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옷 라벨을 보지 않고서는 어떤 브랜드인지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모방이 심하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무리하게 새로운 브랜드를 선보이기보다는 해외 브랜드 디자인을 본떠 겨우 연명하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백화점 정기세일 외에 수시로 진행되는 할인행사나 기획특가전도 소비자 신뢰를 무너뜨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더군다나 지난해부터 자라, 갭, 유니클로 등 해외 SPA(생산부터 소매 유통까지 직접 맡는 패션업체) 브랜드들의 공세가 본격화되면서 영 캐주얼 브랜드들의 입지는 더욱 좁아질 것으로 보인다.
삼성패션연구소는 최근 한 보고서에서 “글로벌 SPA 브랜드 국내 진출이 본격화되면서 국내 영 캐주얼 브랜드들도 브랜드 정체성과 상품 디자인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내 영 캐주얼 시장이 부진하자 백화점 등 유통업체들은 다급해졌다. 기존 대형 브랜드와 해외 SPA로 시장판도가 굳혀지면 유통회사로서도 소비자의 다양한 요구에 빠르게 대처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패션업계에서는 롯데백화점의 수시평가제 도입을 환영하는 분위기다. 다른 백화점들도 품평회 일정을 앞당기고 있다.
영 캐주얼 회사 에이어컴 강봉균 부장은 “새로운 콘셉트의 브랜드를 내놓고 싶어도 판로를 뚫기 어려워 이미 검증된 디자인의 제품을 내놓는 경우가 많다”며 “유통회사에서 신생 브랜드의 입점 문턱을 낮춰주면 디자이너들도 차별화된 디자인 개발에 적극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