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피어, 하버드대 행복학 강의/탈 벤 샤하르 지음/위즈덤하우스
《“어느 누구도 항상 완벽한 기쁨을 맛볼 수 없다. 완벽한 기쁨을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다. 따라서 자신이 행복한지 아닌지 묻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좀 더 행복해질 수 있는가’라고 물어야 한다. 이 질문은 행복 추구가 어떤 지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과정이라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다.”》
행복, 지금 못느끼면 미래에도 없다
인간은 종종 ‘난 행복한가’란 자문에 부닥친다. 하지만 현대인 가운데 이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렇다면 자신 있게 ‘예’라고 대답하지 못하는 사람은 다 불행한 사람들일까.
저자가 보기에 우선 이런 질문 자체가 틀렸다. ‘행복’과 ‘불행’을 이분법으로 나누고 하나의 선택을 강요한다. 지금 행복하지 않다고 답한다고 행복이란 감정이 현재에 누릴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다 보면 행복은 무언가를 채워야만 느낄 수 있는 낯선 감정이 되어버린다.
때문에 ‘해피어…’는 생각의 전환을 충고한다. ‘난 행복한가’보다 ‘어떻게 하면 좀 더 행복해질 수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행복의 방법을 찾는 게 훨씬 긍정적이다.
이 책에 따르면 많은 과학자는 “행복은 우리의 태도와 노력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고 지적한다. 각종 연구결과 인간의 행복지수가 유전적 영향 50%, 후천적 활동 40%, 환경 10% 정도의 비율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유전적 요소는 빼더라도 40∼50%의 변수가 존재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 후천적 활동 역시 사람마다 다르다. 저자는 한때 하버드대에서 철학과 심리학을 전공해 종신교수가 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어떤 이에겐 행복한 그 순간이 자신에겐 전혀 행복하지 않음을 깨달았다. 저자는 과감히 종신교수를 포기하고 ‘행복하게 사는 법’을 가르치는 강사가 됐다. 과감한 포기와 그로 인한 즐거움이야말로 후천적 노력에 해당한다.
‘해피어…’에 따르면 인간이 사는 방식은 크게 네 가지로 구분된다. 먼저 ‘성취주의자’. 미래를 위해 현재를 끝없이 희생하는 이들이다. 둘째, ‘쾌락주의자’는 미래에 대한 희망 없이 순간적인 즐거움만 추구한다. 셋째, 과거에 벌어진 실패에 발목이 잡혀 현재의 즐거움도, 미래의 희망도 잃어버린 ‘허무주의자’가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기 일치자’가 있다.
저자가 볼 때, 앞의 세 가지 방식은 모두 불행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오늘과 내일이 분리된 삶이기 때문에 어디서고 괴리가 생긴다. 자기 일치자들은 다르다. 이들은 과시욕과는 다른 자기표현 욕구를 가지고 현재와 미래에서 즐거움과 의미를 동시에 찾는다. 오늘의 즐거움이 쌓여 내일의 성장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양질의 행복을 맛볼 수 있다. 자기 일치적 삶이란 어렵지 않다. 책에는 ‘감사하라’ 같은 너무 흔한 처방도 들어 있다. 하지만 소중한 것은 이미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임을 어쩌겠는가. 자신의 목표를 점검하고 실천하는가에서 인생은 극명한 차이를 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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