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가야 할 길/M. 스캇 펙 지음·열음사
《“좀 더 위대한 깨달음의 경지라는 것은 단순히 어둠 속에서 불빛이 한 번 번쩍하듯이 그렇게 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천천히 조금씩 오며, 그 조금이라는 것도 자기 자신을 포함한 모든 사물을 관찰하고 탐구하는 각고의 노력 끝에 얻어지는 것이다. 영적 성장의 길은 평생이 걸리는 배움의 길이다.”》
게으름, 정신적 성숙의 최대 장애물
15년 전쯤 일이다. 전공의 시절, 진료를 맡은 환자는 모두 완치시키겠다는 야무진 꿈을 가진 적이 있다. 물론 지금도 이 목표를 버린 건 아니다. 하지만 그 시절 한 선배가 권한 ‘아직도 가야 할 길’은 인생의 태도를 바꾸게 했다. 깊은 감명을 줬을 뿐 아니라 환자를 바라보는 지향점도 바꿔줬다. 그것은 단순히 완치보다 소중한 뭔가를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아직도…’는 정신과 의사인 저자가 실제 환자를 치료하면서 느끼고 고민한 문제점과 해결 방법을 정신치료 과학적인 관점과 영적인 관점에서 동시에 살핀 책이다. 이 책은 미국에서 발간된 처음 5년 동안에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그러나 독자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면서 서서히 장수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대중의 정신적 영적 치유, 특히 영적 성숙에 대한 관심도 그렇게 천천히 커졌다.
인간은 누구도 완벽하지 못하다. 자기만의 독특한 정신적 영적인 문제점을 갖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은 모두 치유가 필요한 환자다. 저자는 이러한 문제점들이 어떻게 발생하는지 하나하나 설명한다. 특히 부모의 역할과 행동이 아이에게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 꼼꼼히 살핀다. 날카로운 관찰력으로 사랑의 이름 아래 이뤄지는 부모의 부정적 억압적 행위가 자식들을 어떻게 망치는지 보여준다.
저자는 무엇보다 인간의 정신적 성숙을 방해하는 요소로 ‘게으름’을 지적한다. 게으름은 뭔가를 이루기 위해 나아가는 길을 가로막는다. 이는 심할 경우 성격장애나 신경증으로 표출된다. 그 때문에 이 책의 관점에서 게으름은 극단화될 경우 ‘악’과 다름없다.
사랑에 대한 저자만의 새로운 정의도 눈에 띈다. 저자는 사랑을 “자기 자신이나 타인의 정신적 성장을 도와줄 목적으로 자기 자신을 확대시켜 나가는 의지”라고 봤다. 행위로 표현되지 않는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다. 자식을 사랑한다면서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자식과 함께하지 못한다면 진정한 사랑이 아닌 것이다. 또한 사랑을 통해 두 개별적 자아가 경계를 허물고 다가간다는 설정도 흥미롭다.
무엇보다 ‘아직도…’는 의사 등 생명을 다루는 이들이 먼저 읽을 필요가 있다. 얼마나 많은 환자를 받느냐를 명의의 기준을 삼는 요즘 세상에서, 정신과 육체를 마음 놓고 맡길 실력과 인품을 가진 의사를 만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진정한 명의란 세상이 던지는 유혹에서 벗어나 환자의 아픔을 이해하고 정신적 영적 성숙을 돕는 동반자가 되어주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일깨운다.
인생의 참다운 의미를 깨닫는다는 건 멀고 지난한 일이다. 꾸준히 걸어가도 닿을까 말까 하다. 개인적으로 이 책은 10년 넘게 그 길의 동반자가 되어줬다. 내용도 여전히 질리지 않고 읽을 때마다 새롭다. 그 의미를 함께 곱씹어보는 소중한 기회를 권한다.
이승환 인제대 의대 일산백병원 정신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