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바뀌면 생각나는 감촉이 있다. 실크 스카프처럼 스르륵 감기는 부드러운 봄바람, 가죽 구두 아래에서 느껴지는 가을 낙엽의 바삭거림, 조심스럽게 몸을 감싸주는 캐시미어 카디건의 포근함 등. 계절이 바뀌면 느껴지는 감촉들이지만 때론 이런 느낌이 그리워져 계절이 바뀌기를 기다리게 되기도 한다.
이 맘 때 촉각이 바라는 감촉이 있다. 찬물에 빨아 탁탁 털어 햇빛에 짱짱하게 말린 깨끗한 면 셔츠의 사각거림이다. 세상이 온통 눅눅하고 축축할 때 이 사각거림은 뽀드득하는 얼음처럼 직설적이지는 않지만 은근하면서도 중독성이 있는 청량감이 있다. 이런 청량감 때문에 나는 좀 더워진다 싶으면 코튼 수트를 꺼내놓고 입을 날을 기다린다. 입을 때 ‘사∼악’하고 느껴지는 시원함과 움직일때마다 바삭거리는 청량감은 나른해 지기 쉬운 계절에 상쾌한 자극이 된다.
축축 늘어지거나 감기지도 않으면서 빳빳하고 힘이 있어 품위가 있다. 또 주름이 가더라도 툭툭 털어 거꾸로 잘 걸어두면 다시 빳빳해지니 좀더 말끔하게 입을 수 있다. 생각처럼 하루만 입어도 무릎이 나오거나 하진 않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무엇보다 폴로 셔츠나 린넨 셔츠, 티셔츠 등 여름의 옷이라면 무엇과도 잘 어울린다. 구두는 물론 캔버스, 심지어 샌들과도 잘 어울리니 사무실에서부터 휴가지까지 이보다 더 좋은 여름 수트는 없다.
아무리 좋은 수트라도 아무거나 입어선 제대로 맛을 낼 수 없다. 다른 모든 수트처럼 코튼 수트 역시 잘 맞아야 한다. 특히 캐주얼한 느낌을 주기 쉬운 옷이라 크게 입어선 안 된다. 대학교 신입생이거나 힙합 전사처럼 보이고 싶지 않다면 긴장감 있게 입자.
색상도 잘 골라야 하는데 너무 밝은 베이지는 휴가 중이라는 오해를 받을 수 있다. 밝은 색을 입고 싶다면 캐러멜 컬러 정도가 적당하며 반드시 어두운 셔츠와 타이를 매칭해 무게 중심을 잡아준다. 하늘색 셔츠에 감색 타이를 매면 상쾌하면서도 품위 있다.
구두와 벨트의 조화도 중요하다. 매일 매던 무거운 가죽 벨트와 투박한 검정 구두는 쌀쌀할 때까지 잠시 잊고 산뜻한 꼬임 벨트와 브라운 구두를 선택하는 것이 좋다.
코튼 수트는 젊고 즐거운 수트이다. 코튼 수트의 바삭거림은 상쾌한 즐거움을 준다. 탁탁 털어 말려 사각거리는 하얀 면 셔츠와 까슬까슬한 린넨 타이, 뽀득거리는 꼬임 벨트와 착착 접어 앞가슴에 밀어 넣은 새하얀 린넨 포켓스퀘어, 경쾌한 캐러맬 색 구두는 입는 사람에게뿐 아니라 보는 사람의 기분에서 시원한 바람을 불어 넣어준다.
한 승 호
아버지께 남자를 배우고 아들에게 그런 아버지가 되고 싶은 수트 애호가
[관련기사]그녀가 신으면 귀족이, 입으면 뉴욕이 된다
[관련기사]동대문 닮은 英 ‘프라이마크’
[관련기사]알만한 이 다 안다…트렌드 미다스 ‘아르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