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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럭셔리, 한국 쟁탈전

입력 | 2008-05-30 02:58:00


루이비통 프라다 등 고급 문화 콘텐츠로 유혹

《명품으로 불리는 럭셔리 브랜드의 두뇌 경쟁이 치열하다.

소비자들은 루이비통이나 샤넬의 가방을 사는 것으로 만족을 얻는다.

하지만 세계 곳곳에서 매출을 늘리기 위한 럭셔리 브랜드의 은밀한 전략은 지금 이 순간에도 진행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명품을 한두 개쯤 가진 요즘 럭셔리 브랜드는 고귀하고 값비싼 것이라는 고전적 이미지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갔다.

소비자들에게 만족을 주기 위해 미술, 건축, 음향 등 여러 분야와 손잡는다.

브랜드마케팅 컨설팅회사인 RISC인터내셔널은 럭셔리 브랜드 구매자들이 다른 사람과의 차별성, 강한 사회적 존재감, 이국적인 삶의 방식 등을 원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럭셔리 브랜드들은 성장 시장인 중국과 한국, 인도 등 신흥 아시아 지역을 주목한다.

일본만 해도 성장기와 성숙기를 거쳐 제품이 더는 안 팔리는 정체기로 진입했기 때문이다. 한국에선 럭셔리 브랜드를 끌어오기 위한 유통회사 간 전쟁도 불붙었다. 서울에서 시작된 백화점들의 ‘명품 전쟁’은 이제 지방 도시들에까지 확산되고 있다.》

○이야기, 예술, 하이테크와 만나다…럭셔리 브랜드의 진화

여행 가방에서 역사가 시작된 루이비통은 1998년 프랑스 파리, 독일 베를린 등 유럽 주요 도시 30곳을 소개한 여행 책자인 ‘시티 가이드’를 판매한다. 부티크 호텔과 레스토랑, 앤티크 가구 숍, 벼룩시장 등의 정보가 가득하다. 2004년엔 미국 뉴욕편도 펴냈다. 루이비통은 올해 이 책자의 출간 10주년을 맞아 특별한 이벤트를 기획했다. 다음 달 선보이는 중국편을 책자가 아닌 음향으로 만드는 시도다. 중국 유명배우들의 목소리로 자국(自國) 명소를 소개하는 새로운 방식의 시티 가이드는 MP3파일로 내려받을 수 있다.

한국에선 다음 달 ‘몽 모노그램(나의 모노그램)’이란 이름으로 고객서비스도 진행한다. 이 브랜드의 스테디셀러인 스피디백과 키폴백을 매장에 가져오면 줄무늬를 가방에 그려 넣어주는 행사다. 아트에 대한 욕구가 커지는 럭셔리 브랜드 소비자들의 취향을 반영했다. 루이비통은 미국 로스앤젤레스 현대미술관(MOCA)과 뉴욕 브루클린 미술관 등에서 ‘리미티드 에디션(한정판)’을 팔며 자사 제품을 예술품과 동일 레벨에 올려놓기도 한다.

박주혜 루이비통코리아 이사는 “루이비통의 경쟁력은 끊임없는 스토리텔링(이야기)과 예술적 경험을 통한 고객과의 소통”이라며 “브랜드의 오랜 역사와 현대적 마케팅이 만나 상승작용을 한다”고 말했다.

프라다는 내년에 100억 원 규모의 초대형 문화행사를 서울 경희궁에서 연다. 현대 건축의 거장 렘 쿨하스가 설치식 박물관을 만드는데 그는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표현하기 위해 경희궁이란 장소를 직접 골랐다. 박물관 내부에선 영화감독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제가 열린다. 프라다는 올초 단편 애니메이션 영화를 만들어 소개하기도 했다.

글=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지면디자인=공성태 기자 coonu@donga.com

▼서울 베이징 뉴델리에 구애작전▼

롯데-신세계 럭셔리매장 전쟁 부산까지 옮겨 붙어

샤넬은 건축가 자하 하디드와 함께 3월 홍콩에서 ‘모바일 아트 프로젝트’를 열었다. 고(故) 존 레넌의 아내인 오노 요코 등 현대 작가 20여 명이 참여한 이 전시는 도쿄, 뉴욕, 런던 등 세계 7개 도시에서 2010년까지 순차적으로 열린다.

구찌는 일본에서 모바일 하이테크와 손잡았다. 구찌 일본 웹 사이트에서 원하는 디자인의 휴대전화 배경 화면을 내려받아 사용할 수 있다.

미셸 슈발리에 파리 도핀대 교수는 그의 책 ‘럭셔리 브랜드 경영’에서 이렇게 밝힌다.

“럭셔리 브랜드는 부가적인 창의성과 감성적 가치를 선사한다. 이 때문에 고객은 브랜드에 강한 감정적 애착과 충성을 갖게 된다.”

○ 새로운 럭셔리 시장인 신흥 아시아로 쏠리는 관심

럭셔리 브랜드들은 신흥 아시아 시장을 향해 열렬한 구애를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에르메스 그룹의 경우 1분기(1∼3월)에 중국 시장의 급성장에 힘입어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시장에서 전년 대비 22%의 높은 매출 성장률을 보였다. 같은 기간 일본에선 3%, 유럽에선 12% 매출이 늘었다.

중국과 인도 등 새로운 럭셔리 시장 개발에 나서는 에르메스는 올해를 아예 ‘인도의 해’로 정했을 정도다. 이미 올 초부터 인도에서 영감을 받은 옷과 스카프 등을 내놓았고 10월엔 인도 뉴델리에 인도 내 첫 매장도 연다.

럭셔리 브랜드들의 요즘 관심은 온통 중국에 쏠려 있다. 오랫동안 유지해 온 전형적 가족 비즈니스를 청산하고 최근 전문경영인을 영입해 다음 달 상장(上場)을 앞둔 페라가모의 변신 키워드 역시 중국이다. 3월 브랜드 설립 80주년 기념행사 장소로 중국을 택한 페라가모는 이달 초까지 상하이 현대박물관에선 자사의 80년 역사를 돌아보는 전시회를 열었다. ‘미래지향적 도시인 상하이는 페라가모가 더욱 중요한 위치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완벽한 곳’이란 설명과 함께.

앞서 펜디는 지난해 럭셔리 브랜드로는 처음으로 중국 만리장성에서 패션쇼를 열었다. 88m의 만리장성 런웨이에서 88벌의 의상을 입은 88명의 모델이 나왔다. 중국에서 행운과 번영을 뜻하는 숫자 8을 활용한 ‘현지 마케팅’이다.

프라다는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다음 달 ‘2008 올림픽 컬렉션’을 선보인다. 지난해 겨울부터 인기를 얻고 있는 곰돌이 테디베어 장식에 각종 올림픽 스포츠 종목의 옷을 입혔다.

한국도 럭셔리 브랜드들이 공들이는 주요 전략 시장 중 하나다.

크리스티앙 디오르는 젊은 여성들의 패션 바이블 격인 영화 ‘섹스 앤드 더 시티’의 다음 달 국내 개봉에 맞춰 주인공이 들었던 ‘디오르 소프트 베이브백’의 한국 판매 예정량을 당초보다 30% 늘렸다. 유행에 민감한 한국 여성들의 수요를 미리 예측해서다.

○ 한국 백화점, “럭셔리 전성시대가 왔다”

그동안 서울에서 진행됐던 롯데백화점과 신세계백화점 간의 명품 경쟁은 조만간 부산 해운대구 센텀시티에서 ‘2라운드’를 맞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12월 문을 연 롯데백화점 센텀시티점엔 구찌가 이미 문을 열었고 루이비통이 매장 공사를 하고 있다. 샤넬과 프라다도 입점한다.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은 영화관과 스파 등 각종 엔터테인먼트 시설을 갖춘 동양 최대 규모의 복합쇼핑센터 ‘신세계 UEC’의 일부로 내년 3월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정병권 신세계 센텀시티점 마케팅팀장은 “부산은 전통적으로 할인점이 강세여서 가계 소비에서 백화점 비중이 낮았다”며 “그만큼 럭셔리 시장 잠재성이 크다”고 했다.

럭셔리 브랜드들은 부산 고객들의 특성도 이미 파악했다. 이주은 프라다 홍보부장은 “부산은 트렌드에 아주 민감한 지역으로 패션쇼 의상까지 거부감 없이 구매할 정도로 서울보다 패셔너블한 성향의 고객이 많다”고 말했다.

현대백화점과 갤러리아백화점도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랑방, 드리스 반 노튼 등 트렌디한 럭셔리 중심으로 새 단장해 1990년대 ‘서울 강남의 명품 백화점’이란 과거의 명성을 회복한 현대 압구정 본점은 리뉴얼 작업 후 20, 30대 젊은 고객이 부쩍 늘었다. 대학가 수요를 잡기 위해 명품 불모지에 럭셔리 브랜드를 속속 들이는 신촌점의 변신도 주목할 만하다. 현대는 2010년 대구와 경기 고양시 일산에도 럭셔리 브랜드를 대폭 갖춘 백화점을 선보일 계획이다.

갤러리아 본점은 청담동이란 지리적 입지 때문에 거의 모든 럭셔리 브랜드들이 한국 시장의 테스트베드(시험무대)로 삼아온 곳이다. 하지만 국내 럭셔리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예전만큼 다른 백화점에 비해 패션의 우위를 갖기 어려워진 측면이 있다.

이 때문에 갤러리아가 최근 직수입하는 프랑스 잡화 브랜드 ‘고야드’와 이탈리아 남성 정장 브랜드 ‘스테파노 리치’의 선전(善戰)은 이 백화점이 추구하는 럭셔리 전략의 방향을 보여준다. 이미 검증이 된 브랜드들을 안전하게 유치하려는 다른 백화점들과 달리 차별화된 브랜드로 유행을 선도하겠다는 것이다.

한정된 백화점 공간을 두고 럭셔리 브랜드들은 너나없이 고객 접근성이 높은 1층과 보다 넓은 평수의 매장을 요구하고 있다. 콧대 높기로 유명한 이들 브랜드와 백화점 간의 신경전도 럭셔리 브랜드 시대에 치러지는 또 하나의 전쟁인 셈이다.

신동한 현대백화점 명품팀 바이어는 “이젠 백화점들이 2층까지도 명품 층으로 확대하고 있다”며 “한국 럭셔리 시장은 적어도 앞으로 3년간 화려한 시대를 누릴 것”이라고 말했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