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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눈/후지와라 기이치]훈풍 속 中-日, 국민끼린 왜 멀까

입력 | 2008-05-30 02:59:00


정부 간에 우호관계가 생겨났다고 해서 양국관계가 모두 잘 풀린다고 할 수는 없다. 그 전형적인 예가 현재 일본과 중국의 관계다.

2008년 5월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의 일본 방문은 적어도 정부 간 외교에서는 대성공이었다. 10년 전 장쩌민(江澤民) 주석의 방일 당시에는 역사문제를 둘러싼 대립이 험악해져 양국관계가 일거에 식어버렸다.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를 계속했던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 아래서 정부 간 정책 조정은 사실상 끊겼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중국을 방문하면서 양국관계는 호전의 징후를 보였지만 아베 총리 본인은 고이즈미 총리 못지않게 내셔널리즘에 경도된 지도자였다. 아소 다로(麻生太郞) 전 외상의 ‘자유와 번영의 활’ 구상에 중국을 견제하려는 의도가 포함된 것처럼 보인 것도 중국으로서는 불안한 요소였을 것이다.

이번 후 주석의 방일로 중-일관계는 크게 진전했다.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총리는 취임 전부터 야스쿠니신사를 방문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중-일 국교 수립 당시 일본 총리는 후쿠다 총리의 부친이었다. 중국 정부로서는 신뢰관계를 만들기 쉬운 상대였다.

정상회담에서는 중국 측이 환경문제에 적극적인 협력자세를 보인 것이 눈에 띄었다. 환경규제에 소극적이고 경제발전을 환경보호보다 우선해 온 중국이 태도를 바꾸고 있다. 환경문제에서 이니셔티브를 발휘하고 싶은 일본으로서는 환영할 만한 변화다.

동중국해 가스전 개발 문제에서 중국은 자국 영해 내에서의 공동개발에 동의했다. 지금까지 수없이 교섭을 반복하면서도 결코 인정하지 않던 공동개발을, 그것도 중국 영해 내에서 인정한 것은 분명 중국 정부의 양보라 할 수 있다. 이로써 에너지 개발과 영토 분쟁을 분리시킬 실마리도 찾게 됐다.

역사문제에서도 대립은 보이지 않았다. 중국 정부는 상대가 후쿠다 총리이기 때문에 역사문제를 쟁점에서 빼버리는 게 가능했다. 이렇게 해서 이데올로기와 내셔널리즘만이 아니라 프래그머티즘과 이익에 기초한 양국관계가 탄생할 참이었다.

그러나 일본 매스컴에 비친 후 주석의 방일 보도는 상당히 냉랭했다. 왜 중국의 환경오염을 제거하기 위해 일본 납세자가 돈을 내야 하느냐, 가스전 공동개발은 중국의 기득권을 사실상 인정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이어졌다. 심지어 판다를 일본에 보내겠다는 후 주석의 성명에 ‘고액의 비용을 대며 판다를 빌릴 필요가 있느냐’는 목소리가 TV에서 방영됐다.

배후에는 중국을 불신의 눈으로 보는 일본의 국내 여론이 있다. 올해 들어 농약만두 사건으로 일본은 패닉에 가까운 상태에 빠졌다. 중국 정부의 티베트 탄압은 성화 봉송 비판으로 연결됐다. 베이징 올림픽을 지지하는 것은 중국의 독재나 티베트 지배를 승인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퍼져 나갔다.

중국에서도 정부보다는 여론 쪽이 일본에 대한 불신이 강한 듯하다. 후 주석의 방일은 중국인에겐 일본의 전쟁 책임을 묻지 않는, 일방적으로 일본에 유리한 방문인 것처럼 비쳤다. 일본인들의 농약만두 의혹이나 티베트 독립 옹호 발언은 중국인에게는 분노를 일으키는 폭언이다. 그 분노는 일본에 관대한 중국 정부에도 향할 것이다.

정부 간 교섭만으로 국제관계를 안정시키기는 어렵다. 상대국 여론의 신뢰를 받게 하는 ‘퍼블릭 디플로머시’에 유독 서툰 두 나라지만, 이런 대(對)여론 외교를 잘하지 않으면 중-일관계의 장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후지와라 기이치 도쿄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