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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美디자인 컨설팅사 ‘아이디오’ 창업자 빌 모그리지

입력 | 2008-05-31 02:52:00


“시제품 디자인에서부터 소비자 입장 최대한 반영해야

겸손은 좋은 디자이너의 가장 중요한 덕목”

성공하는 기업은 제품 디자인과 함께 주변 환경도 고려

《글로벌 디자인의 프런티어인 미국 아이디오(IDEO) 창업자 빌 모그리지가 서울대 한국디자인산업연구센터의 주관으로 30일 오후 서울대에서 열린 ‘제6회 국제디자인문화콘퍼런스’의 강사로 참가해 동아일보와 만났다. 그가 한국디자인학회 회장을 맡고 있는 이순종 교수와 펼친 디자인 대담의 향연으로 초대한다. 편집자주》

▽이순종 교수=전 세계의 수많은 다른 디자인 회사와 달리 IDEO가 단시간에 이렇게 큰 성공을 거둔 비결은 무엇인가.

▽빌 모그리지=좋은 디자인을 개발하려면 사람과 환경이라는 두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일단 좋은 인재를 고용해야 한다. 좋은 사람이 더 많은 좋은 사람을 모이게 하기 때문이다. 위계질서가 없고 가족적이며 우호적인 조직 문화도 중요하다. 사람들이 창조적일 수 있도록 만들고, 그들에게 영감을 제공하고, 그들의 최선을 이끌어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인간을 이해하는 디자인과 제품을 만들려면 다양한 관심사를 가진 인재들이 창의력을 발휘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IDEO에 디자인이나 공학 전공자뿐 아니라 심리학, 생물학, 인류학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인재들이 존재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IDEO는 디자인 회사라기보다 컨설팅 회사에 가깝다. 1990년대에는 IDEO 역시 우리에게 디자인을 의뢰하는 기업을 위해서만 디자인했다. 하지만 2000년 들어 세계화가 급속도로 진전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기업에 디자인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디자인해야 할지, 왜 이 제품을 만들어야 하는지 등을 우리가 먼저 제시하거나 조언하는 일도 빈번하다. 밀라노의 가구시장처럼 하나의 상품만을 위한 단순한 디자인을 원하는 시장도 여전히 존재한다. 하지만 이 같은 단순한 디자인은 현대 사회에서 기업들이 직면하는 복잡한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한다. 우리가 추구하는 디자인은 하나의 상품을 위한 디자인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해법으로서의 디자인이다.

▽이=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디자인이 좋은 디자인이라는 당신의 정의를 실제로 구현한 제품은 어떤 것인가.

▽모그리지=일본의 자전거 부품업체 시마노가 IDEO와 협력해 만든 인간친화형 자전거가 그 예라고 생각한다. 시마노는 자전거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날로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소비자들의 수요를 늘릴 수 있는 자전거를 만들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디자이너, 심리학자, 공학자, 마케터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IDEO 직원들과 끝없이 소비자들을 관찰하고 연구한 끝에 핸들을 높이고, 자동기어를 장착하며, 기어 몸체를 안으로 숨겨 기름때 걱정을 제거한 자전거를 만들어냈다. 여러 분야의 사람들이 모여 자신의 분야를 잊은 채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면 혁신적이고 창조적인 결과를 만들 수 있다. 물론 이 인재들은 단순히 자기 분야에서만 전문가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어야 한다. 전문가로서의 깊이(I)와 여러 분야를 아우르는 통찰력(―)을 갖춘 T자형 인재여야 한다는 의미다.

▽이=우수한 디자인을 개발하는 데 가장 중요한 성공 요인은 무엇인가.

▽모그리지=프로토타입(prototype·원형 혹은 시제품)이다. 사람들을 잘 관찰하고 그들이 원하는 바를 제품 생산 이전 단계에서 시제품화해야 진정으로 소비자들이 원하는 제품을 만들 수 있다. 예를 들어 소비자들이 어떤 제품을 이용할 때 남들은 다 엄지를 이용하지만 어떤 사람은 검지를 이용한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그 사람이 왜 검지를 이용하는지에 대해 물리적 요인, 그래픽, 디지털 경험 등 모든 사항을 총동원해서 생각해 봐야 한다. 그리고 검지 이용자에 관한 프로토타입을 실제 제품 제작의 초기 단계에서 완성해 놓아야 한다.

디자이너가 자신만을 위해 디자인해서도 안 된다. 다른 사람의 필요를 먼저 생각하고 시험을 거쳐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내 작품을 박물관에 전시할 정도로 유명하게 만들겠어’라는 생각으로는 성공적인 디자인을 만들 수 없다. 좋은 디자이너는 무엇보다도 겸손(modest)해야 한다.

▽이=디자인 분야에서 성공한 기업은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모그리지=애플의 아이팟을 보자. 아이팟은 매우 간결하고 아름다운 제품이지만 단순히 아이팟의 디자인이 예쁘고 혁신적이어서 성공한 것이 아니다. 아이튠스(itunes)라는 온라인 음악판매 채널, 빠른 윈도 버전 출시 등이 디자인과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성공한 것이다. 이처럼 성공한 기업은 단순히 제품만 디자인하는 것이 아니라 제품과 그 주변 환경의 변화까지 모두 고려해야 한다.

▽이=한국 기업의 디자인 수준을 평가한다면. 한국 기업에 해 주고 싶은 조언은 없나.

▽모그리지=한 나라나 기업의 디자인 수준을 총체적으로 평가하려면 디자인 인식(awareness), 디자인 기술(skills), 디자인 연구(research) 등 세 분야로 나누어 접근해야 한다. 인식과 기술 분야의 수준은 매우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교육 등으로 디자인의 중요성과 전반적인 인지도가 높아지고 있고 디자인 기술 또한 매우 우수하다. 약점을 거의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디자인 연구 부문을 조금 더 보강한다면 훨씬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디자인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론과 실행의 결합이다. 앞서 말한 대로 소비자와 제품에 대한 총체적이고도 면밀한 연구를 진행한 뒤 이를 바로 프로토타입으로 연결해야 한다. 한국 기업에는 내적 디자인 자원(internal design resource)과 외적 디자인 자원(external design resource)의 균형을 앞으로도 현재와 같이 잘 유지하라고 당부하고 싶다. 일반적으로 일본 기업은 기업 내부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디자인 능력은 뛰어나지만 이를 외부의 조언이나 컨설팅과 결합하려는 노력이 부족하다. 반면 미국 기업은 지나치게 외부 자원에만 의존하려는 경향이 있다. 한국 기업은 비교적 이 둘을 잘 조화시키고 있고, 앞으로도 이 균형을 계속 유지해야 한다.

▽이=미래 사회의 디자인 트렌드는 어떻게 전망하고 있는가.

▽모그리지=미래에는 모든 사람이 디자이너가 될 것이다. 디자이너가 아닌 사람도 개인의 창의성과 직관력을 이용해 디자인 사고(design thinking)를 할 것이다.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빌 모그리지는 영국 출신인 빌 모그리지 씨는 세계 최초의 랩톱 컴퓨터를 디자인한 산업 디자인계의 거물이다. ‘인터랙션 디자인(interaction design)’이란 용어를 고안하며 첨단기술 분야 디자인을 선도해 왔다. 현재 스탠퍼드대, 런던비즈니스스쿨, 런던왕립예술대 등에서 강의하고 있으며 2006년 저서 ‘디자이닝 인터랙션(Designing Interactions)’을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