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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기타]“주입식 교육보다 ‘노는 법’ 가르쳐라”

입력 | 2008-05-31 02:52:00


‘놀이의 힘’ 저자 데이비드 엘킨드 교수 인터뷰

“사람은 가장 인간다울 때 놀고, 사람은 놀 때 가장 인간답다.”(독일 시인 프리드리히 실러)

2004년 한국에서 주5일 근무제가 단계적으로 시행될 당시. “노는 데 정신이 팔려 나라가 흔들릴 것”이란 우려가 나왔다. 처음엔 실제로 그랬다. 주말이면 산으로 바다로 나가기 바빴다. 근데 ‘그것도 하루 이틀’이었다. 놀 일도 뻔했다.

그만큼 ‘논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전문가들은 특히 한국인들이 “효과적인 휴식과 놀이 문화가 부재하다”고 지적한다. 게다가 어른은 일에, 아이들은 입시에 휘둘린다. 23일 국내에 출간된 ‘놀이의 힘’(원제 The Power of Play·한스미디어)의 저자인 데이비드 엘킨드(77) 미국 터프츠대 교수는 “놀이와 사랑, 일(play, love, work)의 결합”을 주장한 세계적인 심리학자. 아동심리를 다룬 전작 ‘기다리는 부모가 큰 아이를 만든다’는 국내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바쁜 일정 중에 ‘이틀 휴가’를 얻어 보스턴 자택에서 쉬고 있던 엘킨드 교수와 28일 전화로 인터뷰했다.

―최근 한국에도 ‘놀이의 재발견’이란 화두로 고민 중이다. 도대체 놀이가 뭔가.

“영화 ‘트랜스포머’를 기억하는가. 놀이란 한마디로 ‘트랜스포메이션(transformation·변환)이다. 공을 떠올려보자.

공마다 다르긴 해도 축구공 하나면 축구 농구 배구 등 여러 스포츠가 가능하다. 공이란 노는 객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놀이를 대하는 인간의 마음이 중요하다. 이 변환은 무궁무진하다. 문제는 그걸 찾아내는 ’마인드‘가 핵심이다.”

―한국에선 스스로 놀 줄 모른다는 지적이 많다.

“한국 상황을 한마디로 재단하긴 어렵다. 다만 놀 줄 모르는 성인은 어릴 때부터 노는 교육을 받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어린 시절부터 부모가 주입식으로 몰아붙인 것이다. 그런 식의 교육은 시간낭비가 될 위험이 크다. 놀이는 사치스러운 일이 아니다. 하버드대나 스탠퍼드대에서도 창의력이나 상상력이 뒤처지는 학생을 여럿 봤다. 그들은 생각할 줄 모르고 행복해하지도 않았다. 놀이는 인간의 상상력을 키우는 매개체다.”

―책을 보면 ‘놀이와 사랑, 일’의 삼위일체를 무척이나 강조한다.

“2006년 10월 보스턴 글로브지에 ‘놀이를 느껴야 학습에 대한 애정을 느끼고 그것은 효과적인 일로 승화한다’는 내용의 글을 기고한 적이 있다. 교육현장이나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적절한 ‘투자’는 놀이와 같아야 한다. 심리적으로 환영받고 보상받는 ‘행위’는 노동이나 학습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를 형성한다. 그리고 이는 더 나은 업적으로 놀이의 더 큰 즐거움을 선사한다. 이는 어린 시절부터 체득될 때 훨씬 창발적인 효과도 커진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당신은 별로 놀 시간이 없어 보인다.

“하하…. 노는 시간의 양이 문제가 아니라 질이 중요하다. 난 강의를 위해 여행하는 틈틈이 크로스 워드 퍼즐 푸는 걸 무척 좋아한다. 내 아이들과 손녀 릴리와 최대한 함께 노는 걸 즐긴다. 여름이면 가족이 함께 수영과 요트를 즐긴다. 이 때 아이들이 스스로 새로운 게임을 개발하도록 옆에서 도와준다. 그게 바로 스스로 삶을 즐기는 시작이다.”

―자녀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책에서 아이를 혼낼 때 “Go to the moon(달에나 가버려)”이라고 말하는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원래 내가 그 말의 창시자는 아니다.(웃음) 어느 드라마에서 한 여주인공이 딸에게 정말 화가 났는데 그렇게 말하는 걸 보고 따라했다. 아이뿐만 아니라 상대방에게 상처 주고 아픔을 던져주는 말은 무척 바보 같은 짓이다. 달에나 가라고 하면 아이조차도 내가 화났다는 걸 안다. 심리학적으로도 이런 상황에서 구사하는 조크는 매우 효과적이다.”

―현대사회는 아이건 어른이건 가지고 놀 장난감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그런데 더 놀 줄 모르는 게 된 건 무엇 때문인가.

“스스로 ‘결정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탓이다. 아이들을 예로 들어보자. 장난감 하나를 살 때도 부모가 모든 걸 결정한다. 무엇을 살지 어떻게 놀지도 부모 머릿속엔 다 들어 있다.

이러니 창의력이 끼어들 여지가 있나. 난 릴리에게 특별한 장난감을 제공하는 게 아니라 자기가 뭔가를 장난감으로 만들도록 유도한다. 그 덕분에 릴리는 스카치테이프 하나로도 하루 종일 놀 수 있는 아이로 컸다. 어른이건 아이건 모든 것이 가능한 ‘기회’를 가져야 한다.”

―한국 어른들을 위한 놀이를 추천한다면….

“요즘 아시아 국가들은 너무 스트레스가 많다. 어른 어린아이 할 것 없이 다들 바쁘다. 너무 규율과 스케줄을 강조하다 보면 창의성이 사라진다. 이때 필요한 것이 생각의 ‘변환’이다. 남편이라면 자녀를 위해 요리하는 걸 놀이라고 생각해 보라. 아내를 위해 정원을 가꾸는 걸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 들이라. 이렇게도 바꿔보고, 저렇게도 해보라. 함께 즐긴다는 게 제일 중요하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