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타자동차와 현대자동차는 서로 추어주기에 바쁘다. 한국 기자들이 도요타 간부에게 ‘현대차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라고 물으면 “그처럼 싼 가격에 좋은 품질의 차를 만드는 비결이 궁금하다. 우리도 배우고 싶다”고 말한다. 현대차가 세계 1위 도요타를 대하는 자세도 겸손하다. 미국에서 ‘아시아 자동차 메이커들이 미국 시장을 휩쓴다’는 보도가 나오면 현대차는 “도요타와 우리는 급이 다르다”며 비교되는 것 자체를 부담스러워한다. 미국 소비자들의 반감이 걱정되기도 하지만 실제로 도요타에 미치지 못하는 점이 많다는 걸 현대차 스스로 절감하고 있다.
두 회사의 실력 차는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최근 몇 달 서울과 도쿄에서 빚어진 풍경은 그런 사실을 거듭 확인시켰다. 도요타의 조 후지오 회장은 3월 ‘한국 시장 본격 진출’을 선언하고 렉서스에 이어 내년 하반기 중 캠리 등 3개 차종을 선보이겠다고 했다. 시장점유율이 너무 빨리 올라가면 반일(反日) 감정이 촉발될 것을 염려해 판매 속도를 조절할 것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일본의 현대차에선 우울한 소식만 들린다. 도쿄 도심 도라노몬에 있는 현대차 일본법인의 직영점은 3월 하순 문을 닫았다. 올해 초 구조조정으로 절반 가까운 직원을 내보냈고, 며칠 전엔 수도고속도로변의 광고판까지 비용 절감을 위해 철거했다. 현지 딜러들은 현대차가 일본에서 계속 장사할 뜻이 있기는 한 건지 반신반의한다.
현대차와 도요타는 2000년 똑같이 상대방 국가에 현지법인을 세웠다. 현대차 사람들은 일본 업체가 한국에서 파는 물량의 10분의 1 정도는 일본 시장에서 팔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8년이 지난 지금 한일 자동차 대결의 승부는 극명하게 갈렸다. 올해 1∼4월 일본에서 팔린 현대차는 고작 170대다. 혼다는 3월 한 달에만 한국에서 1100대가 넘는 차를 팔았다. 현대차로서는 경쟁구도 자체가 불리했던 측면도 있다. 일본은 도요타 혼다 닛산처럼 여러 선수가 동시에 출전해 ‘일제 붐’을 일으켰지만 현대차는 단신으로 외롭게 겨뤄야 했다.
권철현 주일 대사는 4월 이명박 대통령의 일본 방문을 수행해 도쿄에 간 정몽구 현대차 회장에게 “현대차가 일본에서 좀 더 많이 팔릴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고민해 보겠다”고 답했지만 묘수를 찾지 못하는 눈치다. 선행 투자의 필요성은 알지만 전망이 불투명한 시장에 추가로 돈을 들이기가 부담스러울 것이다. 그렇다고 경쟁업체들의 본거지인 일본에서 실패를 인정하고 사업을 접자니 브랜드 이미지 추락이 걱정스럽다.
올해 300만 대 이상을 팔 계획인 현대차에 1000대, 2000대란 수치는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곳이 일본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철수를 하는 것도 아니고, 시장을 제대로 공략하지도 않으면서 어정쩡하게 현상을 유지하는 것은 현대차 자존심에 상처만 키울 뿐이다. 일본 소비자들의 기호가 까다로운 줄 알면서도 현대차가 뛰어든 것은 일본에서 인정받으면 세계 어디서도 통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새로운 디자인과 마케팅 전략으로 무장해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을 주저할 이유가 없다. 현대차가 쉽게 포기해서는 안 된다. 자동차는 단순한 이동수단이 아니라 그 나라 산업의 자부심이기 때문이다.
박원재 논설위원 parkw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