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상황은 우선 대통령에게 난국이지만 넓고 길게 보면 국민에게도 난국이다.
연일 청와대에 진입하겠다는 시위대, 야당들, 이른바 진보진영은 미국과의 쇠고기 재협상이 민심 수습의 대전제라고 외친다. 어떤 국정쇄신책도 재협상이 빠지면 약발이 없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여론조사에서도 60∼80%대의 응답자가 재협상을 원한다. 이런 압박에 주눅 든 한나라당 안에서조차 재협상론이 나온다.
재협상이 아무런 추가 부담 없이 바꿀 수 있는 물건 같은 것이라면 얼마나 좋겠는가. 우리 정부가 재협상을 선언했다고 치자. 그 다음 상황에 대해 한 통상전문가는 “법적으로 재협상이 가능하지도 않지만 설사 정치적으로 가능하다 해도 우리나라는 앞으로 외국과 어떤 협상도 하지 못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당장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발효가 불가능에 가까워질 것이다. 제3국들도 한국을 믿을 만한 협상상대국 리스트에서 지울 것이다. 세계가 매기는 한국 신인도(信認度)가 떨어지고 외자 유치도 어려워질 것이다.
무역의존도는 한 나라의 경제가 무역에 어느 정도 의존하고 있는지를 표시하는 지표다. 국민소득에 대한 무역액(수출액+수입액)의 비율이다. 재작년 기준으로 미국은 21.8%, 일본은 28.1%였다. 중국은 그보다 훨씬 높아 67.0%였다. 미일(美日)도 무역강국이지만 중국과 비교해 내수경제 기반이 현저히 튼튼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무역의존도는 71.6%다. 중국보다 높다.
한국이 얻을 것과 잃을 것
우리의 국내총생산(GDP)은 최근 2년 사이에 두 단계 밀려 현재 세계 13위로 평가된다. 그나마 아직은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이라고 할 수 있는 힘이 무역에서 나온다. 요컨대 무역 증대가 경제성장의 절대적인 원천이다.
몇 년째의 저성장이 우리 국민을 힘들게 하고 있다. 가까운 장래에 내수시장이 확대되고 활성화돼 대외무역이 부진하더라도 이를 대신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그렇다고 ‘우리 경제의 무역의존도를 왜 이렇게 높여 놓았나’라고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이 있다면 ‘수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계속 배고프게 살 것을…’이라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위선(僞善)이다.
땅이 좁고 자연자원도 부족한데 인구는 많은 나라가 국리민복(國利民福)을 꾀하자면 대외 지향적 개방경제를 포기할 수 없다. 사적(私的) 계약이 됐건, 국가 간 협상이 됐건 대외 신뢰 구축 없이는 윈윈을 기대할 수 없다. 더구나 개방경제를 접어버리지 않는 한 세계화의 흐름을 거부할 수도 없다. 그래서 한미 쇠고기 전면 재협상을 요구할 때 안게 될 국가적 국민적 리스크를 생각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논의는 뒷전에 묻혀버렸다. ‘광우병 소’ 수입 가능성이 제로라고 누구나 인정할 수준까지 재협상을 하지 않는 한 국민 건강권 포기라는 주장이 정부를 압도하고 있다. 국제수역사무국(OIE)은 미국을 광우병위험통제국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도 미국보다 통제능력이 떨어지는 나라의 교민들까지 국내의 촛불시위에 동조하는 시위를 벌일 정도다.
이런 상황이니 이명박 대통령이 ‘재협상은 불가능하다’고 선언한다면 민심 수습도 불가능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대외관계의 일대 충격을 내다보면서도 촛불 민심 진화를 위해 재협상 카드를 들고 나올 것인가. 이명박 리더십의 일대 시련이 아닐 수 없다.
추후 미국 소에서 정말 단 한 건이라도 광우병이 발견된다든지 하면 사실상의 재협상 카드를 꺼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리고 지금이라도 ‘30개월 이상 쇠고기’의 수입 및 유통을 실질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을 미국 측과 협의하고 방안을 만들어낼 여지는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교역으로 살아가야 할 국민의 장래까지 원려(遠慮)하며 정부와 여야 정치권, 그리고 국민 각계가 지혜를 모으는 것이 국가적 득책이 아닐까.
국민도 멀리 보고 고민할 때
문제는 이런 의견이 시위대에도, 야당들에도, 이른바 진보세력에도 쉽게 먹혀들 것 같지 않은 상황이라는 사실이다. 이들은 이미 ‘광우병 국면’을 넘어섰다. 그러면서도 ‘재협상만이 해법이다’고 말한다. 대통령이 ‘재협상’이라는 독약을 마신다면 이들이 구급약을 들이댈까. 아니면 반(反)정부-이명박 무력화(無力化)를 위한 작전은 시간표대로 펼쳐질까. 결과적으로 이명박 무력화가 현실이 됐을 때 국민 건강권은 100% 지켜지고 민생(民生)은 새로운 희망의 궤도 위로 올라가는 것일까. 적지 않은 국민도 고민하고 있을 법하다.
배인준 논설주간 inj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