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세계화와 자유무역의 화신(化身)처럼 보이지만 보호무역의 역사가 뿌리 깊다. 케임브리지대 장하준 교수는 ‘미국은 보호주의로 성장해 온 나라’라고 설명한다. ‘19세기 미국은 보호주의 정책의 철옹성일 뿐만 아니라 보호주의의 사상적 고향이었다’(‘사다리 걷어차기’ 중에서). 당시 이익집단의 압력과 복잡한 정치적 거래가 작용해 미국은 수입 물품에 엄청난 관세를 부과했다.
▷1930년대에 들어 미국은 자유무역을 통상정책의 기조로 삼았지만 자국의 이익이 걸려 있을 때는 바로 보호주의로 회귀했다. 1970년대부터 공화당은 자유무역, 민주당은 보호무역 색채를 뚜렷이 드러냈다. 노동조합은 민주당의 중요한 지지 기반이다. 대표적 보호주의 조치가 슈퍼 301조에 따른 무역보복과 철강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반덤핑관세다. 빌 클린턴 대통령 집권기인 1997년 미 무역대표부(USTR)는 슈퍼 301조를 휘둘러 한국 자동차 시장을 개방하도록 만들었다.
▷미 민주당 유력 대선후보인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이 그제 사우스다코타 주 유세과정에서 “한국은 수십만 대의 자동차를 미국에 수출하는 반면 미국이 한국에 파는 자동차는 고작 5000대도 안 된다”고 비판했다. 지난달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아주 결함 있는 협정”이라며 비준동의안을 의회에 제출하지 말 것을 촉구한 데 이어 한미 FTA에 대한 부정적 견해를 거듭 피력한 것이다. 자동차노조의 환심을 얻기 위한 전술적 발언으로 보이지만 미국 안에 보호주의에 대한 너른 지지 기반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전경련은 지난달 발표한 보고서에서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이 승리할 경우 무역조정지원, 미국산업보호, 보호무역을 강화하는 정책이 예상된다’며 ‘미국이 경쟁력을 상실하고 있는 철강 섬유 같은 산업에서 반덤핑제소 등 보호주의가 강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이 한국의 자동차 선박 반도체 가전 같은 상품에 대해 보호주의를 발동하면 우리 경제는 막대한 피해를 보게 된다. 미국 보호주의는 자국 근로자에게 유리할지 몰라도 미국 전체의 이익에는 부합하지 않는다. 한국도 통상 현안에서 미국의 보호주의를 자극하는 일은 피해야 한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