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僞裝移民 가능한 名士 84명 파악…海外旅行규제 등 조치.’
동아일보 1975년 6월 3일자 1면 톱기사 제목이다. 다음 날 조선일보 1면에는 ‘僞裝移民 가능성 있는 指導級 84명 名單작성’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위장이민이란 뭘까. 해외여행을 정부가 어떻게 규제할까. 지금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쉽지 않다. 내용을 좀 더 자세히 보자.
사회저명인사의 위장이민 가능성에 대한 조사는 같은 해 2월 시작됐다. 청와대 사정담당보좌관실, 국무총리실 제4행정조정실, 외무부, 내무부와 치안본부(경찰청 전신)가 극비리에 참여했다.
이들 기관은 직계자녀나 부인을 합법적으로, 또는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이주시켜 놓고 자신은 언제든지 해외로 떠날 수 있는 84명의 명단을 만들었다.
‘정계의 거물 P모 씨, 전직 장관 L모와 S모 씨, 모 사회단체 총재 K 씨와 이사장 K 씨, S재벌 L모 사장, C무역 사장 S모 씨, 전 대학총장 P모 씨, 작가 J모 씨, 서울 서대문 H병원 원장 H 씨….’
이름을 대면 알 만한 인사들이 위장이민을 생각했던 이유는 당시 안보상황과 관련이 있다.
남북한은 1972년 7·4남북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자주, 평화, 민족 대단결이라는 조국통일 3대 원칙에 합의했지만 얼마 안 가 대화가 끊기고 오히려 긴장이 고조됐다.
미국이 지원했던 남베트남의 사이공이 1975년 4월 30일 베트콩에 함락되자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더 커졌다.
일부 사회 저명인사는 북한의 남침에 두려움을 느끼고 가족을 외국으로 빼돌렸다. 기회를 봐서 자신도 도망갈 계획이었다. 정부는 이를 막으려 했다.
기사에는 ‘부인 또는 자녀들의 귀국을 종용하거나 본인의 복수旅券을 포기케 하는 등 행정조치를 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는 표현이 나온다.
국가안보와 국제수지 악화를 이유로 공무원과 기업인, 해외취업 근로자만 해외여행이 가능하던 시절에 복수(複數)여권은 특권의 상징이었다.
대한민국의 국력이 북한을 압도하고 해외여행이 자유화돼서 그런가. 위장이민과 해외여행 규제라는 단어가 낯설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이 아니라 불과 33년 전의 일인데 말이다.
송상근 기자 songm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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