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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5달러면 세계를 누비죠”

입력 | 2008-06-03 20:39:00


팍팍한 일상을 뒤로 하고 떠나는 해외여행.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설렌다.

특히 짜여진 일정대로 쫓아가는 패키지여행이 아니라 여행자 자신이 일정을 조정하는 배낭여행은 현지인들과의 만남을 통해 다른 문화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많아 젊은이들이 선호한다.

여러 나라를 두루 돌아다니는 배낭여행에서 가장 큰 문제는 경비. 예산을 꼼꼼히 세우지 않으면 숙박비, 식비 등에 돈이 뭉텅뭉텅 나간다.

주변에서 생각보다 적은 돈을 들이면서도 볼 것은 다 챙겨서 보는 알뜰 배낭여행객들이 예상외로 많다.

알뜰 여행객은 별난 사람들이 아니다. 학생, 주부, 자영업자, 의사, 엔지니어 등 직업도 다양하다.

이들은 "돈을 절약하는 것 자체가 목표가 아니라 다른 문화를 배우기 위한 수단"이라고 강조한다. 돈을 아끼려면 현지 밀착형 여행을 하게 되고, 그러면 다른 문화에 대해 훨씬 많은 것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 "돈 주고도 할 수 없는 특별한 경험"

인터넷에서 활동하는 '5불 생활자 세계일주 클럽' 동호회는 하루 5달러로 6개월, 1년씩 세계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물론 하루 5달러로 여행할 수 있는 지역은 많지 않다. 이 동호회가 지난 7년 간 세계일주 여행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만든 세계 권역별 1일 평균 경비 통계를 보면 5달러 여행이 가능한 곳은 서남아시아와 인도 정도다.

이 모임에서 활동하는 여행경력 7년의 이두환(32·도쿄대 박사과정) 씨는 "'5달러'의 의미는 꼭 5달러만 쓰며 여행한다는 것보다 여행을 하면서 값비싼 관광지보다 지역 주민이 사는 현장을 여행한다는 데 의미를 둔다"고 설명했다.

2001년 이 씨는 남미 지역을 6개월 동안 돌아다니는데 900달러 정도를 썼다. 하루 5달러면 충분히 여행할 수 있다는 것.

그는 "현지 주민과 사귀면서 밥도 얻어먹고 잠도 얻어 자면서 한국에서는 절대로 할 수 없는 경험을 했다"며 "그런 경험은 돈을 주고도, 아니 돈을 주고는 느낄 수 없는 특별한 것"이라고 말했다.

● 간단한 특기로 현지인들의 마음을 얻어야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면 돈도 안 들이면서 현지 경험도 풍부한 여행을 할 수 있을까.

지역 생활을 맛보려면 우선 지역 주민과 친해져야 하고 주고 받는(give and take) 매너가 필수적이다.

여행경력 10년인 엔지니어 심태열(33·부산 중구 양정동) 씨는 "한국에서 작은 기념품을 많이 가져가거나 간단한 마술, 특기 등을 익혀 가면 좋다"고 귀띔한다.

숙박이나 식사 도움을 받고 기념품, 의약품, 생필품 등을 건네주면 현지인들은 현금을 줬을 때보다 더 좋아한다는 것이다. 기념품을 건네주거나 사진을 찍어주는 것도 알뜰여행객들이 자주 쓰는 비법이다.

심 씨는 네팔에서 마술로 지역 주민의 호감을 산 덕분에 숙식을 해결한 적이 있다.

히말라야 담푸스에 간 그는 낯선 이방인의 모습을 숨어 구경하던 아이들을 모아 놓고 간단한 카드 마술을 보여줬다. 그날 저녁 게스트 하우스에서 쉬고 있는데 아이들이 숙소로 들어오더니 그 뒤로 동네 어른들,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20여 명이 줄줄이 들어왔다. 카드마술이 그 동네에서 입소문 나 구경하러 온 것이다. 동네 사람들은 다음날 저녁 식사에 그를 초대했고 여행 책에 실리지 않은 절경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 언어도 배우고 무료 숙식도 해결

세계를 여행할 때 해당지역 언어를 알고 있으면 큰 도움이 된다. 기본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을 만큼의 영어 구사능력은 꼭 필요하고, '값을 깎아주세요' '화장실은 어딥니까' 정도의 단어는 각 지역 언어로 알고 있으면 좋다.

알뜰여행객이 늘면서 세계 곳곳에 언어를 배우면서 공짜로 숙식을 해결할 수 있는 곳도 생겨나고 있다.

남미 지역을 여행할 때는 스페인어가 필수다. 남미 과테말라 수도 안티고아, 에콰도르 키도 지역 등에는 300여개의 사설학원이 몰려있다. 남미를 여행하는 사람에게 이런 곳들은 '언어를 위한 베이스캠프'로 알려져 있다. 이런 학원들에서는 120달러면 2주 정도 언어를 배우며 숙식을 해결할 수 있다.

중국에서는 2주간 필수 중국어를 가르쳐주는 학원이 많은 베이징 우다코(五道口) 지역이 유명하다. 우다코 학원들은 100달러면 2주 과정으로 기본 중국어를 가르쳐주고 숙식도 제공한다. 물론 사전에 인터넷 조사나 지인들을 통해 믿을만한 학원을 골라야 한다.

● 여행에서 판단력을 기른다

3개월 이상 여행을 계속하다 보면 여행이 보통 일상처럼 느껴진다. 아침에 일어나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저녁에 숙소로 돌아와 잠드는 일상이 반복되면 아무리 좋은 경치, 재미있는 상황을 봐도 감흥이 줄어든다. 매너리즘에 빠지는 것이다.

여행전문가들은 "이런 때가 바로 돌아올 때"라고 말한다. 베테랑 배낭여행자들 사이에서는 "방석이 따듯해지기 전에 돌아오라"는 말이 있다.

몇 달 또는 몇 년에 걸쳐 세계여행을 하고 돌아온 후 남는 것은 무엇일까.

정보관련 기업 해외영업팀장으로 일하며 '5불 생활자 세계일주 클럽'의 운영자로 활동하는 최대윤(35·부산 금정구 장전동) 씨는 "장기 세계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은 외견상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살아가는 '내공'이 쌓이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20대 560일 간 세계 일주를 한 후 마지막 행선지인 중국 베이징에서 귀국을 앞두고 '여행에서 얻은 것이 무엇인가'를 놓고 1주일 동안 고민했던 적이 있다"면서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여행의 경험이 선택과 결정을 내리는 능력을 길러준 것 같다"고 말했다.

"여행을 하면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판단력이 생깁니다. 낯선 여행지에 내리는 순간부터 떠나는 순간까지 모든 것은 자신의 판단과 결정에 따라야 하기 때문이죠. 바로 이것이 여행이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김현지 기자 nu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