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긋하게 걸어라/조이스 럽 지음/복있는사람
《“실망은 우리의 삶을 비참하게 만들 수도 있고, 보다 지혜롭게 만들 수도 있다. 그것은 다분히 실망을 어떻게 보느냐에 달려 있다. (…) 실망을 인정하고 그 실상대로 기대가 채워지지 않은 경험으로 받아들일 때, 훨씬 침착하게 그리고 성장에 더 유익한 방식으로 실망을 대할 수 있다. 인생길의 실망 때문에 기쁨과 감사의 삶까지 놓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영적 성숙 찾아 떠나는 800㎞ 인생순례
이 책의 부제는 ‘산티아고 순례 길에서 얻은 인생의 교훈들’이다. 산티아고 순례 길은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순례자’로 국내에서도 상당히 유명해졌다. 스페인어로 ‘카미노 데 산티아고’라 불리는 800km의 세계적인 도보순례 여정. 수녀인 저자는 자신의 환갑 생일을 기념해 이 순례 길을 직접 준비하고 경험한 과정을 책에 담았다.
저자가 여행을 결심한 건 정신심리학자 카를 구스타프 융의 한마디 덕분이었다. “인생 후반 성인들은 자아의 아직 개발되지 않은 부분이 출현하고 성장할 여지를 줘야 한다.” 이를 마음속에 품고 저자는 6주에 달하는 긴 도보여행을 준비하고 실천하며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또한 깨달음을 얻는다. 이를 ‘몸에 귀를 기울이라’ ‘짐을 가볍게 하라’ 등의 25가지 간단하지만 깊은 성찰이 담긴 경구로 소단원들을 정리해냈다.
하지만 ‘느긋하게 걸어라’는 독자들에게 뭔가를 가르치려 드는 책이라 생각하면 곤란하다. 오히려 이 책은 현학적인 인용이 철저히 배제돼 있다. 자신의 여정을 통해 새롭게 깨달은 지혜를 편안하고 소박한 문체로 풀어간다. 너무나 쉬워서 더 깊은 감동을 주는 역설의 미학. 비종교인들도 거부감 없이 이 책을 집을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다보면 떠오르는 이가 있다. 정신과 의사이자 신학자인 스콧 펙. 그는 정신의학적인 면에서 인간의 무의식을 탐색했다. 그런 그가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정신의학은 인간의 마음에 대한 이해의 폭과 깊이를 확장하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인간 고유의 심성 가운데 중요한 치유인자 중 하나인 ‘영성(spirituality)’에 대한 연구는 아직 미진한 부분이 많은 상태다.”
정신의학계를 살펴봐도 이러한 심성에 대한 연구는 최근 새로운 화두다. 이는 불교 명상 기법에 기반을 둔 ‘알아차림(mindfulness)’이란 개념과도 일맥상통한다. 인간 심성의 가장 깊은 곳에 숨겨진 개념을 찾아 인간의 마음을 다시금 살피는 새로운 치료적 철학으로 부각되는 것이다.
종교마다 명칭은 다르지만 이 개념들은 공통점이 있다. 일상에 매몰된 자기 자신을 초월해 좀 더 참다운 세상을 보는 안목을 찾기 위해 애써야 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그렇게 얻어진 새로운 조망은 다시 일상을 관조하고 겪어냄으로써 더욱 인간의 마음을 성장시킨다.
현대인들은 언제나 생산적이어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다. 생산적일 때만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강박관념이 항상 존재한다. 그럴 때마다 이 책을 ‘느긋하게’ 한 줄씩 읽어내려 가보자. 여유는 스스로가 허락할 때 주어지는 감정이다. 저자 역시 산티아고로 가는 길을 고된 시련이 아니라 삶을 정제하는 방식으로 받아들였기에 영성으로 향하는 길이 됐다
김성수 용인시 정신보건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