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 3300Cal 대 유럽인 1000∼1500Cal.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미국과 유럽의 1인당 하루 영양 섭취량을 보면 당시 1억2500만 유럽인들이 겪던 어려움을 짐작할 수 있다. 전쟁 통에 유럽 전역의 농업과 축산업이 황폐화됐기 때문이었다.
승전국인 영국도 경제는 엉망이었다. 국가 전체 순자산의 4분이 1 정도인 300억 달러를 전쟁 비용으로 쓴 영국 정부는 사실상 파산상태였다. 빈곤으로 불만이 팽배한 틈을 타 동유럽에는 소련의 지원을 받은 공산 정권이 속속 들어섰다.
미국의 해리 트루먼 행정부는 이런 상황이 자유주의 세계를 심각하게 위협한다고 판단했다.
1947년 6월 5일 조지 마셜 미 국무장관은 하버드대 졸업식 연설에서 “시장경제 체제를 채택하는 나라들이 경제를 부흥시키려고 집행하는 계획에 미국은 대규모 재정 지원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유럽부흥계획, 일명 ‘마셜 플랜’이 처음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이어 트루먼 정부는 “자유주의 수호를 위해 필요하다”며 의회를 설득했고 1948년 3월 경제협력법이 통과됐다. 미국은 이후 1951년 말까지 서유럽 16개국에 120억∼130억 달러를 원조했다. 지금 화폐가치로 1000억 달러(약 102조 원)가 넘는 금액이었다.
공산주의 팽창을 방해하는 이 계획에 소련은 강하게 반발했다. 하지만 나중에는 이 계획을 본뜬 ‘몰로토프 계획’을 동유럽 국가를 대상으로 추진했다.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서독 네덜란드 등의 국민총생산은 마셜 플랜이 진행되는 동안 연평균 15∼25% 증가했다. 농업 생산은 전쟁 이전 수준을 넘어섰고 기근은 사라졌다. 마셜은 1953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이후 마셜 플랜은 다른 나라에 대한 대규모 경제 원조를 일컫는 대명사가 됐다.
로버트 졸릭 세계은행 총재는 올해 4월 초 아프리카 개발도상국에서 심화되고 있는 식량 위기와 관련해 “국제사회가 ‘제2의 마셜 플랜’을 실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2월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북한 지원을 마셜 플랜에 비유해 경제 전문가들 사이에서 격론이 벌어지기도 했다. “시장경제 국가를 지원했던 마셜 플랜과 전제적 공산국가인 북한에 대한 지원은 전혀 다른 것”이라는 게 비판론의 핵심이었다.
박중현 기자 sanju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