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상은 모든 운동의 기초종목, 근간이다. 그러나 한국 육상의 현실은 딴판이다. 유망주를 찾기가 힘들 정도로 한국 육상은 척박한 환경에 놓여있다. 그나마 마라톤이 한국 육상의 전통과 명맥을 잇고 있지만 트랙과 필드에서는 이렇다할 스타도 두드러지지 않고, 수십년 묵은 한국기록도 수두룩하다. 이처럼 열악한 저변과 환경을 지닌 한국 육상은 ‘거짓말’과도 같은 대사를 이뤘다. 올림픽, 월드컵과 더불어 세계 3대 스포츠 이벤트라는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2011년 대구로 유치한 것이다. 그 주역 가운데 한 사람이 대한육상경기연맹 신필렬 회장이다.》
‘삼성맨’이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 신 회장은 삼성 야구단을 맡아 20년간 갈망해온 한국시리즈(2002년) 우승을 일궜다. 최초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삼성 그룹에 선물한 그는 2004년 11월에는 김응룡 감독에게 사장직을 물려주고 그룹으로 복귀했다. 스포츠마케팅에 적극적인 삼성그룹은 그러나 신 회장을 오래 놀리지(?) 않았다. 2005년 2월 대한육상경기연맹을 신 회장에게 맡긴 것이다. 대한육상경기연맹 수장으로서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해야 하는 그의 어깨는 무겁기만 하다.
- 2011년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개최를 통해 어떤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가.
“62억명이 지켜보는 대회다. 이 대회를 계기로 한국과 대구의 위상이 높아져야 하고, 국민들에게는 ‘한국 육상선수들도 괜찮구나’라는 자신감을 심어줘야 한다. 보름간 전 세계인들, 특히 유럽인들이 집중적으로 시청하는 만큼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호감도와 친밀도를 높이는 계기로 활용돼야 한다. 이것도 일종의 스포츠마케팅인데 삼성은 스포츠마케팅에 대한 집중투자를 통해 글로벌 브랜드로 도약했다.”
- 스포츠마케팅의 기회로 적극 활용할 수 있는 분야는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올림픽과 월드컵을 잇달아 개최해 많은 세계인들이 지켜봤지만 스포츠마케팅이 수반되지 않아 국가적 위상과 기업 가치 제고에는 한계가 있었다. 실제로 일본은 굵직한 국제대회를 여러개 치렀는데 미즈노와 혼마 같은 일본 기업들은 스포츠마케팅을 적극적으로 펼쳐 크게 성장했다. 나이키도 한때 휘청거리며 큰 위기를 겪었지만 골프를 통한 스포츠마케팅을 통해 재도약할 수 있었다. 타이거 우즈를 보라. 이처럼 스포츠마케팅을 잘 활용하면 국가와 기업 이미지 개선에 도움이 된다.”
- 최근에는 국내 기업은 물론 중앙정부 또는 지방정부 차원에서도 스포츠마케팅에 적극적인 편인데.
“1년 단위의 예산 편성과 집행으로는 한계가 있다. 장기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베이징올림픽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실례로 ‘코리아 하우스’를 들어보자. 코리아 하우스는 중심부에 자리 잡지 못한 채 주변부로 밀려나 있다. 8년 전 베이징올림픽 개최가 결정됐을 때 바로 신청해 길목을 선점했어야 하는데 당시 예산을 편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스포츠마케팅을 바라보는 국가적 시각과 안목이 좀더 커져야 한다. 대한올림픽위원회(KOC) 스포츠마케팅위원장도 맡고 있는데 예산이 몇천만원밖에 안된다. 이러니 프라임 존에 코리아 하우스를 설치하지 못하는 것이다.”
- 대회를 준비하면서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분야는.
“이번 대회를 계기로 한국 육상의 근간, 인프라를 잘 구축하는 게 목표다. 물론 성적도 어느 정도 내야하지만 작년 오사카대회를 보라. 일본은 (대회 유치 결정 이전부터 육상에 대해) 우리보다 많이 투자했지만 결국 여자마라톤에서 동메달 한개만을 따냈을 뿐이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생활체육을 집중 육성하자는 소리가 높은데 엘리트체육에 대한 투자도 병행돼야 한다. 엘리트체육 활성화를 위해서는 학교체육이 중요한데 운동장도 좁고, 입시 위주로 흐르다보니 체력장도 없어졌다. 청소년들은 게임을 비롯해 놀거리가 많아져서인지 운동도 잘 하지 않는다. 이처럼 저변이 죽어버린 상태에서는 (쓸만한 육상 재목을) 뽑아내는 시스템도 약화될 수밖에 없다. ”
- 육상의 재도약과 경기력 향상을 위한 청사진은.
“‘육상아카데미’를 설립해 선수와 지도자를 육성하고자 한다. 육상아카데미 속에는 실내육상장과 연구시설도 갖춰 육상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동시에 구축할 계획이다. 보다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육성체제를 갖출 것이다. 국내 여건상 육상은 겨울과 더불어 여름에도 해외전지훈련이 필요한데 그동안 정부예산지원이 충분치 않아 실시하지 못했다. 그나마 지난 겨울 처음으로 전훈을 다녀왔는데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은 육상아카데미와 실내육상장 설립이다. 금년중으로 육상아카데미에 대한 시안이 발표될 것이다.”
- 삼성 야구단 사장으로서 큰 업적을 남겼다. 육상연맹 운영은 어떤 편인가. 전혀 생소하지는 않을 텐데.
“난 전문가들을 신뢰한다. 그들의 능력을 존중했기에 삼성병원도, 야구단도 성공한 것 같다. 육상에서도 마찬가지다. 육상인들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하고 지원해줄 계획이다. 육상인들 스스로도 ‘이번 기회가 육상 도약의 마지막 기회가 될 것’이란 자세를 갖추길 바란다. 대구대회가 끝나면 향후 추가적인 국가 지원도 장담할 수 없지 않느냐. 각자의 이해를 버리고 한마음으로 뭉쳐야 한다.”
- 외부, 특히 정부 지원도 절실할 것으로 보인다.
“육상의 저변 확대를 정부가 적극 지원해줘야 한다. 이건 육상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민 체력이 강해져야 한다. 생활체육은 40대 이상, 엘리트체육은 10∼20대에 분포한다. 또 청소년의 95가 학생이다. 학교체육을 활성화하면 저변 확대는 이뤄질 수 있다.”
● 신필렬 회장?
▲학력=경남고-서울대 경영학과
▲경력
1972년=삼성그룹 입사(회장 비서실)
1976년=삼성그룹 회장 비서실 비서팀장
1978년=삼성물산 자금과장, 심사부장, 해외관리부장
1984년=삼성물산 뉴욕지사장
1992년=삼성물산 인도네시아 총괄
1995년=삼성서울병원 행정 부원장
2000년 7월=삼성 라이온즈 대표이사 사장
2005년 2월=삼성전자 사장, 대한육상경기연맹 회장
정재우 기자 jace@donga.com
사진=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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