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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권순택]대통령-검사장 만찬

입력 | 2008-06-06 02:53:00


2003년 3월 6일 노무현 정부의 검찰 간부 인사안(案)이 나오자 검찰은 패닉(공황)상태에 빠졌다. 서열 파괴, 기수 파괴 인사에 한 간부는 “자기들끼리 잘해 보라고 그래”라며 반발했다. 사흘 뒤 노 대통령의 제의로 대통령과 평검사 대표 10명의 TV 생중계 ‘토론회’가 열렸다. 한 검사가 대통령이 과거 검사에게 청탁한 사실을 거론하자 대통령은 “이쯤 되면 막가자는 거죠”라며 청탁 전화가 아니었다고 반박했다. 토론회는 노 대통령의 판정승으로 끝났다.

▷이렇게 시작된 노 대통령과 검찰의 관계는 우호적이었다고 보기 어렵다. 과거 정부에서는 매년 한두 차례 열린 전국 검사장 회의도 2003년 6월 26일 한 차례 열린 뒤 사라졌다. 검사장 회의가 열리면 검사장들은 청와대에서 식사를 하며 대통령으로부터 그의 국정철학에 대해 강의를 들어야 했다. 검사장 회의가 사라진 것은 노 대통령 측근들이 연루된 대선자금 수사로 대통령과 검찰의 관계가 불편해졌기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 하지만 그 후부터 정치검찰 시비는 크게 줄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20일 제63회 전국 검사장 회의가 끝난 뒤 법무장관과 검찰총장을 비롯한 검찰 고위간부들과 청와대에서 만찬을 함께할 예정이다. 5년 만에 부활되는 이 행사에 대해 청와대는 “검사장 회의 후 검사장들의 청와대 예방은 관례였다”면서 “밥 한 끼 같이 먹자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이 만찬은 취임 후 공직자들을 격려하기 위해 재외공관장(4월 23일) 전국 세무서장(5월 16일) 등을 만난 것과 같은 통상적인 대통령 직무 수행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대통령이 당사자인 BBK 사건 수사가 19일 끝나고 공기업 비리 수사가 진행 중이라는 점에서 부적절한 만남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검찰 고위직 출신의 한 변호사는 “그동안 세상이 엄청나게 바뀌었는데 청와대 참모들은 변화를 못 느끼는 것 같다”면서 “대통령과 전국 검사장들이 함께 밥 먹고 웃는 모습이 TV에 나오면 권력형 비리 사건이나 공기업 수사에 많은 사람이 의구심을 가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은 5년 만에 부활시키려는 검사장들과의 만찬 관례를 국민이 어떻게 볼지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

권순택 논설위원 maypo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