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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홍찬식]‘생활 정치’라는 가면

입력 | 2008-06-10 20:56:00


노무현 정권 후반기에 각종 선거에서 연전연패한 진보 진영은 이른바 ‘계층 배반 투표’를 가장 뼈아프게 생각했다. 자신들을 지지해줄 것으로 믿었던 서민 계층이 부유층을 대변하는 보수정당 후보에게 열심히 표를 던지더라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서민과 영세 자영업자의 적극적인 지지를 얻어 당선된 것처럼 말이다. 서민의 마음을 얻는 데 실패한 진보 진영은 침울하고 절박했다.

대안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냉장고론’이 대두됐다. 가전제품 회사가 냉장고를 판매할 때 해마다 똑같은 디자인과 성능을 지닌 상품을 내놓으면 잘 팔릴 수 없는 것처럼 진보 세력도 같은 길을 걸어왔다는 반성이었다. 노무현 정권 말기에 정권을 내줄 것이 분명해지자 ‘진보의 재구성’이 본격 논의됐다.

진보 진영의 自省벌써 잊었나

화염병과 쇠파이프를 동원한 과격시위에 불법 파업 같은 저항과 파괴의 이미지를 불식시켜야 한다고 했다. 반(反)세계화 투쟁이나 신자유주의 반대처럼 입으로만 서민을 구한다고 떠드는 거대담론에서 벗어나 구체적인 민생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했다.

결론은 ‘생활정치’였다. 삶의 현장 속으로 파고들자는 것이다. 예컨대 교육문제 해결을 위해 전국 대학을 평준화하자는 정책을 내놓으면 썰렁한 반응이 돌아올 뿐이지만 서민이 힘들어하는 대학등록금 인상 문제에 집중적으로 매달리면 분위기는 크게 달라진다. 부동산 교육 등 민생과 직결된 이슈나, 새로운 관심사로 떠오르는 생태 환경 문제에 진보적 가치를 앞세워 적극 가담하는 방향이다. 그것도 최소한 10년 이상은 ‘생활정치’에 매달려야 서민들을 붙잡을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생활정치’의 성과는 뜻밖에 빨리 찾아왔다. 미국 쇠고기에 반대하는 촛불집회는 진보 진영이 터뜨린 회심의 반격이다. 촛불집회의 ‘배후’는 ‘이명박’이거나 혹은 존재하지 않으며 다들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다고들 하지만 틀린 말이다. 어느 시위나 주도하는 사람은 있다. ‘진보’라는 깃발이 세워지면 빠짐없이 모여드는 단체들이 광우병국민대책회의라는 이름으로 집회를 이끌고 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광우병’이라는 생활적 이슈가 이처럼 큰 반향을 일으킬 줄 몰랐을 것이다. 대통령 선거가 끝난 뒤 6개월도 안 되어 일어난 민심의 대반전에 누구보다 놀란 쪽은 진보 진영이 아닌가 싶다. 먹을거리 문제에 큰 기대를 갖지 않고 건드려 본 게 대박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10년 뒤의 재기를 꿈꾸며 내공을 쌓고 있던 진보 진영에 이번 일이 행운이 될지, 아니면 독(毒)이 될지는 아직 모른다.

이들은 어느새 ‘생활정치’를 버리고 1980년대의 ‘선전선동 정치’로 되돌아가는 모습이다. 준법집회로 시작해 도로를 점거하더니 ‘청와대로 가자’를 외치고 일부 시위대가 쇠파이프를 동원하고 전경버스를 파괴하는 폭력시위로 변질됐다.

민심은 한곳에 머물지 않는다

요구사항도 ‘재협상’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이명박 아웃’ ‘정권 퇴진’으로 시시각각 바뀌었다. 시민들이 집회에 참가한 뜻은 광우병 위험에 대한 거부일 터인데도 국가체제를 흔드는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재협상 문제만 해도 일부 단체는 순수한 민심과는 다른 의도를 드러낸다. 이들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반대하는 이유는 한국과 미국이 경제적으로 함께 묶이는 게 싫기 때문이다. ‘완전 재협상’이라는 외교 관례상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요구를 밀고 나가야 한미 FTA가 좌초될 것이라는 계산이다. 국제적으로 배타주의가 득세하는 가운데 이때 발생하는 경제적 피해에 먼저 타격을 받을 사람은 역시 서민들이다.

이쯤 되면 ‘생활정치’라는 구호는 권력을 얻기 위한 가면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 진보정치의 수준은 그만큼 후퇴했다. 당장은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분노에 편승해 큰 것을 손에 쥔 듯해도 민심은 한곳에 머물지 않는다. 어둠이 걷히고 촛불이 잦아들면 평가는 냉정할 것이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