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복의 정복/버트런드 러셀 지음/사회평론
《“행복한 사람은 자신이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한 성원임을 자각하고, 우주가 베푸는 아름다운 광경과 기쁨을 누린다. (…) 마음속 깊은 곳의 본능을 좇아서 강물처럼 흘러가는 삶에 충분히 몸을 맡길 때, 우리는 가장 큰 행복을 발견할 수 있다.”》
사랑하고 일하며 세상에 관심을 가져라
이 책은 20세기 최고의 지성 가운데 한 사람인 버트런드 러셀(1872∼1970)의 1930년 저작이다. 수학자이자 철학자이며 문필가이기도 한 그가 만 58세에 쓴 책이다. 98세까지 장수하면서 40여 권에 이르는 저작을 남기고 노벨 문학상(1950년)까지 수상한 그의 인생 비결도 담겨 있는 듯하다.
물론 ‘행복의 정복’은 지금과 80년 가까운 시차가 있어 책에 나오는 사회 상황에 대한 묘사는 약간 생소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에 대한 통찰은 시간의 격차를 뛰어넘는다. 철학자라고 이론만 가득하고 난해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접어도 된다. 도처에 저자 특유의 냉철한 지성이 번득이긴 해도, 청소년 시절 자살을 생각했을 정도로 불행했으나 이를 극복하고 만년의 행복을 누린 저자의 체험이 바탕에 깔려 결코 공허하지 않다.
“문명국가의 대부분 사람이 겪고 있는 원인 모를 일상적인 불행”을 다룬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전반부 ‘행복이 당신 곁을 떠난 이유’는 불행에 대해서, 후반부 ‘행복으로 가는 길’은 행복에 대해서 썼다.
불행의 근원을 찾는 전반부는 저자의 경험에서 출발한다. 여기서 무엇보다 자신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 불행의 시작임을 깨닫는다. 스스로의 죄와 어리석음, 결점에 집착하는 청교도적 시각에서 벗어나서 외부에 대한 관심을 키워야 불행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고 봤다.
또한 자기도취나 권력욕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 몰입의 해악을 보여 준다. 집착이나 걱정, 질투 등 불행의 흔한 원인들, 그리고 거기서 빠져나오는 방법도 알려 준다. 권태를 두려워하며 끊임없는 자극을 추구하는 삶의 허망함을 되짚어야 한다. 이를 통해 단조로운 삶을 견디는 능력과 ‘생산적인 권태’의 중요성을 역설한 대목은 두고두고 되새길 만하다.
후반부는 “행복은 무엇보다 인간과 사물에 대한 따뜻한 관심에서 비롯된다”는 전제 아래 ‘행복으로 가는 길’을 탐구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사랑과 일, 폭넓은 관심이다.
먼저 ‘사랑’은 안정감과 열정의 원천이다. “지나치게 강한 자아라는 감옥”에서 벗어나 호혜적인 사랑을 피워 나가야 한다. ‘일’은 기술의 발휘와 건설, 두 가지 요소에 집중해야 한다. 이럴 때만이 일에서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 ‘폭넓은 관심’은 생업이나 주된 관심사 말고도 세상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이는 일상에서 오는 긴장감을 푸는 열쇠다. 또한 편협한 시각에서 벗어나 균형감각도 얻을 수 있다.
한 시대를 풍미한 지성인의 충고는 정신의학 측면에서도 매우 유용하다. 같은 길을 가는 한 선배는 항상 “환자는 모두 동토(凍土)에 사는 이들이다. 봄바람으로 얼어붙은 땅을 녹여 꽃을 피우는 것이 치료”라고 말했다. 인간에 대한 애정과 인생에 대한 관조가 가득한 철학자의 조언에 귀 기울이다 보면, 따뜻한 봄바람이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반추하게 된다.
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