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위(品位)라는 말은 금이나 은, 다이아몬드 등 보석류의 순도(純度)나 무게를 나타낼 때 흔히 쓴다. 보석류를 사고 팔 때는 ‘금 18K’ ‘다이아 몇 캐럿’처럼 등급을 표시하는 품위증명서가 대개 첨부된다. 주화(鑄貨)를 만들 때도 존경받는 역사적 인물이나 도안을 통해 액면가에 상응한 품위를 나타내려고 한다. 언제부터인지 이 말이 사람에게도 쓰이기 시작했는데 내면적 가치보다 겉모습이 품위의 척도가 되는 경향이 많아 문제다.
▷직장생활을 할 때는 물론이고 퇴직 후에도 품위를 의식하며 살아야 한다. 자칫 잘못하면 좋던 인간관계를 망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설날이 되면 세뱃돈의 액수에 따라 윗사람의 품위가 매겨지고, 각종 경조사 때는 부조의 액수가 품위를 결정짓기도 한다. 입는 옷, 먹는 음식, 타는 차량의 가격에 따라 대우가 달라지는 장소도 많다. 그러니 자신의 형편을 고려하기보다는 체면치레에 더 신경을 쓰는 게 예사다.
▷인터넷 매체가 직장인 1100여 명을 설문조사한 바에 따르면 73%가 품위유지비 지출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71.5%가 그 이유를 ‘자기를 위한 투자’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품위유지비로 얼마를 쓰든 제 돈을 쓴다면야 탓할 이유가 없다. 국민의 혈세를 쌈짓돈처럼 빼내 쓰는 국회가 문제다. 자신들의 세비(歲費)만큼은 매년 꼬박꼬박 올리는 국회가 전직 국회의장들에게 퇴임 후 6년간 월 450만 원 상당의 품위유지비를 주자고 나섰기 때문이다.
▷전직 국회의원들의 친목모임인 헌정회(憲政會) 회원 중 65세 이상은 월 100만 원씩의 품위유지비를 받는다. 올해 헌정회 예산은 105억 원에 이른다. 헌정회육성법이라는 법도 있지만 현역 의원들도 헌정회 일이라면 굳이 토를 달지 않는다. 자신들도 미래의 수혜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헌정회에 선심을 베푸는 것은 결국 자기 배를 불리는 것으로 입법권의 남용이다. 그것도 부족해 전직 국회의장들의 품위유지비용까지 세금에서 주자고 하니 국회가 과연 제정신인가.
육정수 논설위원 sooy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