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이 12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원인 출입구 앞에 차를 세운 뒤 걸어 들어오고 있다. 신원건 기자
“외국 기업과의 경쟁만 보고 달렸는데
제 자신 주변 돌아보는데는 소홀했다”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의 배임과 조세포탈 혐의로 기소된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이 12일 열린 1심 첫 공판에서 “잘못이 있다면 모든 책임은 내가 지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공소사실은 변호인을 통해 대부분 부인했다.
이 전 회장이 피고인 신분으로 법정에 서기는 1995년 이후 13년 만이다.
이 전 회장은 이날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부장판사 민병훈) 심리로 열린 이른바 ‘삼성사건’ 재판에서 모두진술을 통해 “지난 20년간 외국 기업과의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신념 하나로 앞만 보고 달려왔다. 지금 와서 보니 제 자신의 주변을 돌아보는 데 소홀했음을 깨달았다”며 “모두 제 불찰이고 그에 따른 책임은 제가 모두 질 테니 저와 함께 법정에 선 사람들의 잘못이 있다면 선처해 주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이날 공판엔 이 전 회장을 포함한 삼성그룹 전현직 임원 8명이 피고인으로 출석했다.
그러나 이 전 회장 측은 경영권 승계 및 시세차익을 얻기 위해 에버랜드 전환사채(CB)와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저가로 발행한 뒤 이를 이재용 씨 남매에게 몰아줘 두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는 혐의는 강하게 부인했다.
변호인 측은 “그룹 차원에서 에버랜드 CB를 저가로 발행하라거나 기존 주주들에게 실권을 지시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조준웅 특별검사는 “피고인들이 수사 단계에서는 CB와 BW 발행을 지시한 사실을 인정하고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투지 않겠다고 했다”며 혐의를 부인하는 변호인 측 주장에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이 전 회장은 6시간 넘게 진행된 재판을 마친 뒤 법원을 나서며 “(내가) 책임지겠다고 해서 유죄라는 것은 아니다. 죄가 되면 책임지는 것이고 죄가 되지 않으면 책임을 안 지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말했다. 다음 재판은 18일 열린다.
▲ 영상취재 : 신세기 동아닷컴 기자
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