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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성 스포츠전문기자의&joy]부부 여행작가 최미선-신석교

입력 | 2008-06-13 02:58:00


《먼 산 부엉새 소리에도 잠 깨어 뒤척이는데 지겨워라

집사람 코고는 소리

몹시도 성가시더니

오랜만에 친정 길 옷 투정하며

훌쩍 떠나버린 빈 자리

코고는 소리 없어

잠 오지 않는다

한평생 살 맞대고 살면

미움도 쌓여

결 고운 사랑 되는가

문득 텅 빈 방

귀뚜라미 소리

늦가을 벌판처럼 텅 비었다

두 바퀴로 ‘세상 한 바퀴, 인생 두 아름’

부부 여행작가 최미선-신석교의 ‘길위의 삶’

○같은 직장 다니다 나란히 사표 내고 길 떠나

최미선(46·156cm 41kg) 신석교(44·170cm 64kg) 씨는 사내커플이다. 최 씨는 글 쓰는 기자, 신 씨는 사진 찍는 기자. 서울 광화문 아무개신문사에서 누가 봐도 잘나가는 ‘부부 기자’였다. 2003년 여름, 이들이 느닷없이 사표를 던지고 홀연히 사라졌다. 이유는 ‘바람처럼 훨훨 자유롭게 살고 싶어서…’.

배가 좀 고프더라도 맘대로 낄낄대고 살아보자! 더 늙으면 후회할 텐데 일단 저지르고 보자! 둘은 손바닥이 터져라 마주쳤다. 돈? 밥? 그까이 꺼! 아내가 글 쓰고, 남편이 사진 찍어 책 내면 되고…. 마침 하나밖에 없는 고딩 딸은 기숙사 생활 하고…. 부부는 용감했고 무식했다. 잘될까?

그 후 5년. 부부는 여기 기웃 저기 기웃 어슬렁거렸다. 봄이 오는 남도 땅을 다니며 들꽃이 그렇게 예쁜 줄 처음 알았다. 히말라야 설산에서 인간이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지 깨달았다. 고독과 허무를 배운 건 체코 프라하였다. 스페인 산티아고 길에선 수많은 순례자들을 만나며 ‘사람 사는 게 어디든 비슷하구나’라고 느꼈다. 조선 땅의 가늘고 구불구불한 ‘가르마 길’이 사무치게 보고 싶었던 것도 바로 그 길에서였다.

쿠바 사람들을 보고 느리게 사는 법을 배웠다. 세상 급할 거 하나도 없었다. 돈이 없으면 뭐 어떤가?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모두 행복했다. 시도 때도 없이, 즐겁고 신나게 몸을 흔들어댔다.

○아내는 글 쓰고 남편은 사진 찍고 ‘찰떡 궁합’

지난해 봄, 부부는 겁도 없이 사이클로 대한민국 해안을 따라 한 바퀴 돌기로 모의(?)했다. 서울을 출발해 ‘서해안∼남해안∼동해안’을 거쳐 다시 서울로 돌아오는 코스. 이브인 최 씨가 “한바퀴 휭 하고 돌아볼까?”라고 먼저 말을 꺼내자 아담인 신 씨가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참에 우리 땅 구석구석을 찬찬하게 살펴보자는 데야 할 말이 없었다.

“사실 비행기 여행이야 점에서 점으로 이동하는 ‘맛보기 여행’일 뿐이다. 자동차나 기차 여행은 좀 낫지만 그것도 선을 따라 눈요기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걷기나 자전거는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전면 여행이다. 언제 어디서든 내 맘대로 쉴 수 있고 살갗에 싱그러운 바람을 느낄 수 있고 땅과 나무 풀이 버무려 내는 온갖 냄새도 맡을 수 있다. 새소리, 소 울음소리, 사람들 두런거리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다.”(아내 최 씨)

“난 아내를 딸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보호해 줘야지 누가 하겠는가. 뭔가 저지르는 것은 짱이지만 뒷감당은 영 아니다. 더구나 아내는 자전거 생초보다. 기어를 어떻게 조작하는지도 모른다. 누가 뒤에서 잡아주지 않으면 혼자 출발하지도 못한다. 전국을 한 바퀴 돌고 온 지금도 달리면서 한 손조차 놓지 못한다. 남자들이야 때때로 두 손 다 놓고도 달리지만….”(남편 신 씨)

첫날부터 ‘난리부르스’에 엉망진창. 최 씨는 중심을 잡지 못해 툭하면 자전거가 지 맘대로 비뚤배뚤. 오르막길은 아예 끌고 가기 일쑤였다. 남편은 이미 시야에서 사라졌다. 사거리에서 신호에 걸리면 ‘출발은 혼자 어떻게 하나’ 걱정 태산. 안드로메다군단 장갑차 같은 트럭들은 툭하면 “빼엑∼” 하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지나갔다. 터널 안에선 화차 삶아 먹는 소리가 고막을 터뜨릴 지경이었다.

남편 신 씨도 애간장이 다 녹았다. 아내 뒤에 가다 보면 아슬아슬 금세 무슨 일이 날 것 같고 그래서 몇 번 ‘이래라 저래라’ 하면 최 씨가 버럭 짜증을 냈다. 씩씩대며 앞에 가도 신경은 온통 뒤에 곤두서 있기 마련이다. 잠시 아내가 시야에서 보이지 않을 땐 온몸에 힘이 빠지고 진땀이 났다.

45일 동안 2730km. 힘들면 쉬고 배고프면 밥을 먹었다. 해가 지면 핸들을 접었다. 바쁠 게 하나도 없었다. 애시 당초 계획이란 게 없었다. 부부 하루 세끼 밥값 4만∼5만 원에 숙박비 3만∼4만 원 등 450만 원. 사이클 80만 원, 헬멧 19만 원, 고글 15만 원, 바지 8만 원 등 장비 값 550만 원. 신발은 보통 운동화를 신었다. 총비용 1000만 원.

“난 토끼풀이 네잎클로버라는 걸 자전거여행으로 처음 알았다. 하얀 찔레꽃이 그렇게 향기롭고 머릿속을 맑게 하는지 비로소 알게 됐다. 비록 뼈만 남고 앙상하지만, 진정한 몸짱은 들판에서 일하는 수많은 노인들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분들을 보면서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난 사지도 멀쩡한데 앞으로 뭔들 못하겠나’ 하는 마음을 먹게 됐다. 거품이 완전히 빠졌다. 이젠 식당일이든 뭐든 닥치면 못할 게 없다. 자전거여행은 나로 하여금 자연과 사람을 알게 해준 보물여행이었다.”(아내 최 씨)

“많이 넉넉해졌다. 뭘 내 손아귀에 꽉 움켜쥐어야만 내 것이라는 생각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이 세상 모든 것들이 나와 이어져 있다는 걸 느꼈다. 시골 아이들을 보면 내 가족 같고 바다 위를 날아가는 갈매기도 한식구 같았다. 자전거는 심장이 터질 것 같은 오르막도 있지만 그만큼 감미로운 내리막도 있다. 작은 것이지만 남에게 해주는 따뜻한 말 한마디가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알았다. 남의 이야기를 끝까지 다소곳하게 들어주는 것도 그 사람에게 큰 위안이 된다는 것을 배웠다”(남편 신 씨)

○“이 세상 모든 생명 그물코처럼 모두 이어져”

여행은 돌아오기 위해서 떠난다. 야구에서 타자가 홈을 떠나 1, 2, 3루를 거쳐 다시 홈으로 돌아오는 것과 같다. 돌아온 여행자는 떠날 때의 그 사람이 아니다. 떠나기 전엔 ‘물은 물이고 산은 산이다’. 길을 떠나면 ‘물은 물이 아니고 산은 산이 아니다’. 다시 집에 돌아오면 ‘물은 물이고 산은 산이다’. 하지만 출발할 때의 물과 산은 돌아왔을 때의 그것과 완전히 다르다.

최, 신 씨 부부는 자전거로 서울을 떠났다. 1루 전남 목포까지 쭈글쭈글한 할머니의 뱃살 같은 서해안을 따라갔다. 갯벌은 늙은 어머니의 빈 젖처럼 밭았다. 가슴이 먹먹하고 짠했다. 붉은 노을에 눈물을 글썽였다.

2루 부산까지 이어지는 남해안은 아기자기했다. 오솔길을 달리는 듯했다. 바람은 싱그러웠고 바다는 잔잔했다. 강 같은 평화가 물밀듯이 밀려왔다.

3루 강원 속초까지 닿는 동해안은 곧은 등뼈처럼 담백했다. 한겨울 동치미국물처럼 시원했다. 암소의 눈처럼 그윽하고 순했다. 미시령을 넘어 홈으로 들어오는 길은 자꾸만 멈칫거렸다. 달콤한 귀향. 아쉬웠다. 느릿느릿 속도를 늦췄다. 문득 부부 얼굴이 보리밥 알갱이처럼 둥글었다.

:최미선 신석교 부부가 낸 책:

○ 내 청춘 다 바쳐 죽도록 놀아보는 여행 (랜덤하우스·2003년)

○ 떠나요 남도로(랜덤하우스·2004년)

○ 야호! 우리가족 체험여행 (동아일보사·2005년)

○ 대한민국 최고여행지를 찾아라 (랜덤하우스·2005년)

○ 네팔예찬(안그라픽스·2005년)

○ 한권으로 끝내는 퍼펙트 프라하 (안그라픽스·2006년)

○ 개도 고양이도 춤추는 정열의 나라 쿠바 (안그라픽스·2007년)

○ 자전거 생초보와 길치의 대한민국 자전거여행(북노마드·2008년)

김화성 스포츠전문기자 mar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