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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속의 오늘]1966년 美‘미란다 원칙’ 판결

입력 | 2008-06-13 03:00:00


에르네스토 미란다는 멕시코계 미국인이다. 그의 삶은 한마디로 추악했다. 하지만 아이로니컬하게도 그의 이름은 ‘인권의 대명사’로 길이 남아 있다.

미란다는 1963년 3월 미국 애리조나 주 피닉스 시의 한 극장 앞에서 18세 소녀를 유괴해 들판으로 끌고 가 강간했다. 경찰은 당시 21세인 그를 납치 강간 혐의로 체포했다. 경찰서로 붙들려간 그는 피해 소녀로부터 범인으로 지목받는다. 2명의 경찰이 그를 조사했다. 변호사는 선임되지 않은 상태였다. 미란다는 무죄를 주장하며 완강하게 버텼다. 하지만 2시간의 경찰 심문 끝에 그는 손을 들고 만다. 범행자백자술서를 쓰고 서명도 했다.

재판이 시작됐다. 미란다는 갑자기 말을 바꾼다. 무죄를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강요된 자백에 따라 진술서를 억지로 썼다고 주장했다. 재판정은 술렁거렸다. 그러나 법원은 미란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범죄사실이 명백했기 때문이다. 애리조나주법원은 그에게 ‘최저 20년 최고 30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미란다는 애리조나주법원에 상고했다. 주대법원의 판결도 마찬가지였다. 애리조나주대법원은 원심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의 무죄를 주장하는 ‘미국자유시민연맹’은 연방대법원으로까지 이 사건을 끌고 갔다. 1966년 6월 13일 미연방대법원은 미란다의 손을 들어주는 극적인 판결을 내린다. 연방대법관 9명 가운데 4명은 미란다의 유죄를 주장했다. 반면 5명은 무죄라는 미란다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불리한 증언을 하지 않아도 될 권리(미국 헌법 제5조)와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권리(미국 헌법 제6조)를 침해당했다는 것이다. 이 판결로 그는 석방됐다. 아무리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라도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기본 권리가 침해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당신이 말한 것은 법정에서 불리하게 사용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질문하기 전에 당신은 변호사와 상의할 권리가 있습니다.”

경찰이 피의자를 연행할 때 반드시 알려야 하는 ‘미란다의 원칙’은 이렇게 탄생했다.

피의자의 인권에 대한 중대한 판결을 만들어낸 미란다. 그러나 그의 삶은 순탄치 못했다. 감옥에서 풀려난 후 동거 여인의 증언으로 다시 유죄가 확정돼 옥살이를 해야 했다. 1972년 가석방됐다가 4년 뒤인 1976년에 술집에서 싸움을 하다가 죽었다.

최영해 기자 yhchoi6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