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퇴근길에 만난 그 남자.
회색 슈트에 흰 셔츠를 받쳐 입고 줄무늬 넥타이까지 갖춰 맸다. 비즈니스맨답게 격식은 잘 차렸지만 이마에선 땀이 줄줄 흘러내린다. 재킷을 벗어 드니 셔츠에 땀이 흥건하다. 금방 설렁탕 먹고 나온 ‘아저씨 스타일’이 돼 버렸다.
더위가 시작되는 요즘 ‘쿨비즈(Coolbiz)’ 패션으로 내 남자를 산뜻한 멋쟁이로 만들자. 쿨비즈는 ‘쿨(cool)’과 ‘비즈니스(business)’의 합성어. 넥타이를 풀거나 재킷을 벗어 간편하게 연출하는 여름 패션이다. 사무실에서 체감 온도를 낮춰 냉방 에너지를 아끼고, 나아가 지구 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다.
최근에는 쿨비즈를 권장하는 관공서와 대기업이 많아져 노타이 차림으로 출근하는 게 그리 어색하지 않다. 쿨비즈가 여름 남성 패션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아 가는 단계여서 올해는 ‘파격적인’ 의상도 많이 나오고 있다.
○ 넥타이 안 매도 깔끔한 목선
넥타이를 매지 않아도 흐트러짐 없이 세련된 분위기를 내려면 셔츠의 칼라 부분이 잘 정돈돼 있어야 한다. 사람들의 시선이 많이 닿는 칼라가 구겨지면 전체적인 스타일도 구겨진다. 일반 셔츠보다 칼라가 1cm 정도 높으면 입체적인 느낌을 줘 깔끔해 보인다. 칼라 끝에 단추가 달려 있어 고정해 주는 ‘버튼다운 칼라’도 좋다.
노타이 차림은 자칫 목과 쇄골로 이어지는 ‘V존’이 밋밋해 보일 수 있다. 이때는 재킷의 가슴 주머니에 포켓치프로 포인트를 줄 수 있다. 처음에는 어색할지 몰라도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기에 좋다. 옷깃과 소매가 몸판과 다른 색깔로 된 ‘클레릭 셔츠’를 입는 것도 괜찮다.
넥타이를 매지 않을 때 셔츠 사이즈가 넉넉하면 너무 흐트러져 보일 수 있다. 지오투 변선애 디자인실장은 “넥타이를 안 맬 땐 평소보다 조금 타이트한 셔츠를 선택해야 정돈돼 보인다”고 말했다. 타이트한 셔츠를 입으면 셔츠의 맵시만으로도 멋을 낼 수 있어 넥타이가 없는 허전함이 채워진다.
○ 땀자국 없는 보송보송한 등
공기가 잘 통하면서도 무게는 가벼워 쾌적함을 살린 슈트가 많이 나오고 있다.
갤럭시 정희진 디자인실장은 “여름에는 슈트의 골격 역할을 하는 부자재를 줄이거나 시원한 기능성 소재로 만든 슈트가 제격”이라고 말했다.
여름을 대표하는 슈트로는 ‘언컨슈트’(Unconstructed Suit의 줄임말)가 꼽힌다. 슈트의 형태를 잡아 주는 구조물을 최소화하고 어깨 패드의 두께도 줄여 가볍고 편안하다.
시원한 소재로는 ‘모헤어’와 ‘리넨’이 꼽힌다. 모헤어는 앙고라산양에서 나온 털로 수분을 잘 흡수하고 몸에 잘 붙지 않는다.
실크처럼 광택이 나면서도 촉감이 탄력적인 게 특징이다.
맨스타의 ‘에어컨슈트’와 갤럭시의 ‘애니수트’는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물질이 들어간 무수한 마이크로캡슐을 원단에 입혀 청량감을 살렸다.
지오투의 ‘드란치노 쿨재킷’은 극세사를 사용한 드란치노 소재로 만들어 재킷의 무게가 100g이 채 안 된다. 땀은 밖으로 내보내고 바람은 잘 통한다.
로가디스의 ‘사라 쿨’ 바지는 태양열과 자외선을 막아 옷과 피부 사이의 온도를 3도 이상 낮춰 준다고 한다. 로가디스 조상영 상품기획자(MD)는 “친환경 제품이 주목받으면서 천연소재 의류가 각광받고 있다”고 말했다.
자일리톨과 녹차, 대나무 등에서 추출한 성분을 넣은 소재로 만든 니트나 셔츠도 있다. 자일리톨은 땀이 나면 흡열반응을 일으켜 시원하게 해주고, 녹차와 대나무에는 항균 효과가 있다고 한다.
셔츠처럼 단추가 달린 디자인이면서도 면 소재로 된 ‘오픈형 티셔츠’도 시도해 볼 만하다. 셔츠보다 한결 편하고 시원하다.
쿨비즈의 디자인도 한층 새로워졌다. 최근엔 일반 재킷과 달리 주머니에 뚜껑이 달려 있지 않아 마치 주머니가 덧대진 듯한 느낌을 주는 ‘아웃포켓’ 재킷이 많이 나온다. 또 소매에 달린 단추 서너 개도 단순히 장식이 아니라 단추를 풀면 소매를 쉽게 걷어 올릴 수 있도록 기능적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 화이트재킷 사이로 빛나는 그의 얼굴
올해 쿨비즈 패션의 큰 특징은 과감해진 컬러다.
진남색처럼 어두운 컬러의 재킷이 가장 무난하게 여겨지지만 최근엔 과감한 화이트나 하늘색 등으로 한층 밝고 심플한 패션을 연출하는 남성도 많아졌다. 여기에 블루나 그린 셔츠를 입으면 산뜻하게 포인트를 줄 수 있다. 심지어 주황색처럼 튀는 재킷도 나온다. 컬러풀한 재킷에 흰 바지를 입거나 7분 바지와 스니커즈를 매치해 발목을 드러내는 스타일도 유행한다. 30대 이상 직장인들에게도 인기다.
아예 상의와 하의를 모두 화이트로 맞추는 ‘퓨어 화이트’ 스타일도 지난해 여름부터 인기다. 이때는 재킷 안에 너무 튀지 않는 연한 색깔의 셔츠를 매치하면 좋다.
화이트셔츠라도 꽃무늬 같은 은은한 자수가 새겨져 있으면 세련돼 보이면서 노타이 차림의 밋밋함을 보완할 수 있다.
블루, 화이트, 네이비 같은 심플한 색깔의 재킷은 반바지와 잘 매치하면 주말 레저용으로도 어울린다.
쿨비즈에는 딱딱한 느낌의 검은 가죽구두보다는 베이지나 브라운 계열의 신발이 어울린다. 로퍼를 신으면 캐주얼하면서도 세련된 느낌을 준다. 단 로퍼에 양말까지 갖춰 신는 실수는 피하자.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