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닐곱 명씩 앉은 둥그런 테이블에서 두 명 정도만이 열렬히 무대에 반응한다. 대개는 시큰둥한 얼굴로, 의자에서 일어나 자리를 비우기 일쑤다.
6월 10일(화) 오후 7시 30분, 제주 해비치 호텔 그랜드 볼룸을 가득 채운 관객은 좀처럼 박수를 치지 않는다. 라틴 재즈와 살사를 선보이는 ‘코바나’의 흥겨운 기운도 이 곳에서는 왠지 머쓱해진다.
‘코바나’는 2006년 크리스마스, 콜롬비아 칼리 공연 당시 2만 여명의 관객을 휘어잡았던 라틴음악 그룹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 자정부터 새벽 4시까지 연습을 해온지 벌써 10년이 흘렀다.
정정배 음악감독은 “매번 관객이 무대 앞으로 달려 나와 몸을 흔들고 열광한다”며 관객참여를 공연의 장점으로 꼽았다.
라틴음악 본고장에서도 호평을 얻었지만, 웬일인지 해비치 공연에서는 단 한 명도 춤을 추지 않았다. 엄밀히 말해 이 날 관객은 ‘관객’이 아니다. 공연을 기획·홍보하고 직접 무대에 올리는 공연 관계자들만 모였다. 이들은 ‘매서운 눈초리’와 ‘인색한 박수’로 “문예회관에 올려도 될 공연인가? 안 될 공연인가?” 꼼꼼히 따져보는 공연 ‘쟁이’들이다. 공연을 극히 좋아하는 까닭에, 역설적으로 폭발적 반응은 없다.
9일(월)부터 12일(목)까지 열린 ‘2008 제주해비치아트페스티벌’은 서울, 전남, 제주 등 전국 16개 지역의 91개 문예회관 실무자들이 한자리에 모인 축제였다. 아트센터 운영 방안에 대한 세미나, 우수운영 사례발표, 쇼케이스, 축하 공연 등이 이어졌다.
특히 동종 업계 사람들이 한데 모인 흔치 않은 기회라 서귀포 바닷가 술자리는 새벽 2∼3시까지 계속됐다. 이들의 대화 소재도 단연 공연이다. 공연 평도 “좋다. 싫다” 가 아니다. “지난 번 소나기 뮤지컬이 어땠느냐?”는 충무아트홀 정일주 대리의 질문에 “공연장 바깥 소음이 들리는 게 문제”라며 한국공연예술경영인협회 배지혜 연구원의 지적이 이어진다.
이들은 관객에 비해 공연 자체를 느낄 여유가 없다. 무대 뒤에서 보는 것과 앞에서 보는 것은 굉장히 다르다. 전국문예회관연합회 도준태 팀장은 “뒤에서 공연을 보면 연주자 숨소리까지도 느껴진다”고 설명했다. 보는 입장이 아니라 오히려 연주자나 배우 입장이 되기 쉽다. 그래도 이들만큼 문화공연을 많이 보는 사람이 있을까?
“2009년 251일 동안 공연을 진행해야 한다”는 고양아람누리극장 지준희 홍보실장은 “어떤 장르를 좋아하냐?”는 질문에 “다 좋다”고 답했다.
부천문화재단 문화사업팀 정진원 씨는 “공연준비는 소위 막노동이다. 좋아하지 않으면 못 한다”고 못을 박는다. 한국공연예술경영인협회 강창일 상임이사는 “관객은 우리보다 안목이 높다고 생각하며 일한다. 겸손한 마음으로 공연 보는 눈을 키워야 한다”며 공연 관계자로서의 필수덕목을 강조했다.
제주=변인숙 기자 baram4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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