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7월 5일(한국시간) 포르투갈 리스본 루즈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포르투갈과 그리스의 유로2004 결승전. 경기 후 그라운드 위에서 펑펑 울음을 쏟아내던 어린 선수가 있었다. 스콜라리 감독이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했지만 그의 눈물은 그칠 줄을 몰랐다. 누구보다 지기를 싫어했던, 지독한 승부근성을 지닌 선수. 바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23·맨체스터 유나이티드)였다.
2003년 스포르팅 리스본에서 맨유로 둥지를 옮긴 호날두는 이듬해 유로 2004를 앞두고 스콜라리 포르투갈 대표팀 사령탑의 부름을 받는다. 홈그라운드에서 열려 포르투갈 축구 사상 첫 우승이 기대됐으나 포르투갈은 그리스에 0-1로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고, 호날두는 대회에서 2골 2도움을 올리고도 울음을 삼켜야했다.
4년이 지나 다시 열린 유로 2008. 호날두는 더 이상 4년 전 앳된 소년이 아니었다. 올 시즌 프리미어리그 득점왕과 UEFA 챔스리그 득점왕을 동시에 거머쥐며 이미 세계 최고 스타의 반열에 오른 호날두. 터키와의 조별리그 1차전에서 골을 터뜨리지 못하며 잠시 숨을 고른 그는 12일 벌어진 강호 체코와의 2차전에서 1골1도움을 올리며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포르투갈이 터뜨린 3골 모두가 호날두의 발끝에서 시작됐을 정도로 그는 이미 팀 공격의 중심축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이 뿐이 아니다. 상대 수비가 찰거머리처럼 달라붙으면 짜증을 내던 ‘풋내기’ 호날두는 이제 팀 공격에 활로가 보이지 않을 때면 측면에서 중앙으로 자리를 바꿔가며 상대 골문을 노릴 정도로 노련한 플레이를 선보였다. 후반 18분 데쿠의 패스를 받아 터뜨린 이날의 결승골은 이런 활발한 움직임에서 나온 결과물이다. 이따금씩 터지는 강력한 중거리포와 날카로운 프리킥도 여전해 최고 수문장으로 군림하고 있는 체코의 체흐를 한시도 방심할 수 없게 만들었다.
경기력 뿐 아니라 심리적인 면에서도 팀을 먼저 생각할 줄 아는 호날두의 성숙함이 돋보였다. 누누 고메스로부터 이어받은 주장 완장의 효과일까. 프리미어리그 이적 후 줄곧 단독 플레이에 대한 지적을 받아왔던 호날두이지만 이날 후반 추가시간 체흐와 일대일로 맞선 상황에서 더 완벽한 위치에 있던 동료 콰레스마에게 볼을 패스하며 팀 승리에 쐐기를 박았다.
거액의 이적료와 연봉을 받고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할 것이라는 루머에 “대회가 끝나면 입을 열겠다”며 유로 2008에 집중하고 있는 호날두. 그의 머릿속에 대회가 끝나는 시점은 결승전과 일치하지 않을까.
윤태석 기자 sport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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