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기록물’을 둘러싸고 청와대와 노무현 전 대통령 측이 갈등을 빚고 있다. 정부는 어제 노 전 대통령 측에 대통령 기록물을 반환하라고 요청했다. 노 전 대통령 비서관은 앞서 “전자문서의 사본을 가져와 잠정 보관하고 있다”고 인정했다. 그는 “노 대통령 퇴임 후 문서보관 사실을 현 정부 측에 설명하고 양해를 구했다”고 했지만 어떤 문서를 가져왔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회고록 정리나 기념관 전시를 위한 기록이라면 별 문제 없겠지만 외교나 국방과 관련한 국가 기밀문서라면 퇴임하는 대통령이 가져가서는 안 될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은 자료에 관한 한 사상 최고의 기록을 남겼다. 경기 성남시에 있는 대통령 기록관에 보관된 그의 기록물은 무려 376만7764건이나 된다. 18년간 집권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기록물 3만7614건의 100배, 역대 대통령의 기록물 총계 33만841건의 10배가 넘는다. 숫자에 놀라 조선왕조실록을 뛰어넘는 대통령실록이 나왔다는 말을 하는 이까지 있다. 행정도시에 1100억 원을 들여 새 대통령 기록관을 짓는 프로젝트도 노 전 대통령 때 만들어졌다.
▷문제는 자료의 가치다. 클릭 한 번으로 문서 생성이 가능한 디지털 시대에 자료 건수로 대통령 기록물의 수준을 평가하는 것은 어리석다. 자료의 옥석을 가리지 않으면 낭비적 요소도 크다. 효율적으로 국정운영을 하는 데 도움이 되는 백과사전 같은 자료를 집대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후임 대통령이 신속하게 업무를 파악하고 전임자의 자료를 활용할 수 있도록 인수인계를 잘하는 것도 중요하다.
▷노 전 대통령의 기록물은 새 정부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거꾸로 분쟁을 키우는 씨앗이 되고 있다. 신구(新舊) 정부는 인수인계 자료를 놓고 빈 깡통이니 아니니 하며 설전을 벌였다. 새 정부는 전 정부가 주요 문서와 자료를 파기했고, 인사 데이터베이스는 대통령 기록관으로 넘겨버려 이를 열람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아야 할 판이라고 볼멘소리를 한다. 봉하마을에 가 있는 기록도 논란이나 감정싸움으로 끝낼 일이 아니다. 대통령 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제3조에는 ‘대통령 기록물의 소유권은 국가에 있다’고 명시돼 있다. 잘잘못과 소유권을 명확히 가려야 한다.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