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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홍권희]‘찍새, 딱새정치’는 왜 못 하나

입력 | 2008-06-15 20:43:00


세계 최대 소매유통업체인 월마트는 ‘EDLP(Every Day Low Price)’라는 ‘최저가 판매’ 전략을 쓴다. 지구상에서 가장 싼 원재료로 인건비가 가장 싼 곳에서 상품을 만들어 항상 싸게 판다는 전략이다. 특유의 민첩한 수송체계로 경쟁 회사보다 물류비를 3% 절감하고 있다. 월마트는 이런 식으로 물류를 개선하고 발전시켜 세상을 소비자에게 좋은 방향으로 바꾼다.

전국운수산업노동조합 화물연대는 ‘물류를 멈춰 세상을 바꾸자’고 외친다. 요즘 물류는 과거처럼 물건을 판매하는 과정의 유통만이 아니다. 원료시장부터 소비시장까지를 잇는 ‘종합물류’, 소비자의 다양한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한 ‘부가가치 물류’다. 이런 마당에 화물연대가 며칠째 물류를 멈췄으니 세상이 안 바뀌면 오히려 이상하다. 물론 나쁘게 바뀌는 거지만.

화물연대는 다단계 하청 방식의 시장구조가 불만이라고 한다. 가장 현실적인 어려움은 최근의 고(高)유가 때문에 차를 운행할수록 손해가 난다는 것이다. 고유가는 세계 공통의 현상이다. 혼자만 살려고 하지 말고 서로 비용을 분담(分擔)해야만 문제를 풀 수 있다. 게다가 지금처럼 협상이 잘 안 될 때는 누군가가 중재를 해야 그나마 해결책에 접근할 수 있다.

대의(代議)정치 체제에서 국가적 난제의 적절한 중재자는 국회이다. 그러나 18대 국회는 개원도 못하고 있다. 여당인 한나라당은 당내 계파 갈등에 골몰하다가 어제야 당정회의에서 물류대란 문제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제1야당인 통합민주당은 장외(場外)로 돌며 정부의 무능을 탓할 뿐이다.

2003년 물류대란 때 정치권의 행태와 놀라울 정도로 빼닮았다. 5년 전 신문은 화물연대의 파업이 5월 2일 시작돼 부산·광양항의 수출 선적이 마비되는 비상사태가 벌어졌는데도 ‘집권당인 민주당은 허구한 날 신당 타령이고 원내 다수당인 한나라당은 당권 경쟁에 정신이 없다’고 전하고 있다. 화물연대는 5월 15일 아침에 파업을 철회했는데 같은 시각에 물류대란 이후 처음 열린 민주당 확대간부회의에서 의원들은 “대처가 미흡했다”고 관련부처 장차관들을 질타했다.

지금 국회는 5년 전보다 더 심해 아예 문도 못 연다. 복잡하게 꼬인 양상이지만 “국민의 요구를 잘 알고 있다”면서도 행동은 안 하는 손학규 통합민주당 대표가 먼저 풀어야 할 것 같다. 요즘 그는 촛불집회 같은 길거리 정치와 대의 정치에 양다리를 걸치고 ‘재미’를 보려는 듯하다.

4년간 지구를 열 바퀴 돌며 114개 외국 기업으로부터 141억 달러를 유치한 전 경기지사와 나라를 뒤흔드는 난제가 쌓여 있는데도 국회 문도 열지 못하게 하는 민주당 대표가 다른 사람인지 혼란스럽다. 경기도의 ‘찍새’(투자할 만한 외국 기업을 찾아내는 사람), ‘딱새’(외국 기업이 투자하도록 지원하는 사람)가 해외를 누볐던 것처럼 이제라도 정치권, 국회가 국민의 애로 사항을 찾아내는 ‘찍새 정치’,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딱새 정치’를 할 수는 없는가.

한국 기업의 물류비는 수년간 줄기는 했지만 매출의 9.9%(2004년)로 일본의 두 배다. 더 줄일 여지가 많다. 그래야만 기업 경쟁력도 높아진다. ‘화물연대 난제’에 정치권이 더 빨리, 더 깊숙이, 그러나 덜 정략적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물류를 개선하면 세상이 바뀐다.

홍 권 희논설위원 koni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