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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세상/박성래]실학자 이규경과 공학자 최주의 집념

입력 | 2008-06-16 02:58:00


5월 말 과학사와 기술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고마운 책 한 권이 나왔다. 아니 우리나라의 전통기술을 알려는 사람들 모두에게 대단히 중요한 책이다. 우리 과학기술사에서 아주 ‘중요한 사건’으로 볼 만한 이 책에는 ‘오주서종박물고변’이란 한글 제목이 붙어 있다. 이 제목만으로는 도무지 무슨 책인지 알아낼 재간이 없을 듯하다. 그 밑에 작은 글자로 ‘五洲書種博物考辨’이란 설명이 달려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그게 무슨 뜻인지 짐작할 사람은 많지 않다.

이 책은 원래 1834년 이규경(李圭景·1788∼1856)이 쓴 우리 전통기술, 특히 금은과 구리, 보석과 돌, 그리고 뼈와 상아, 수은과 안료 등을 주제로 쓴 책이다. 유명한 실학자 이덕무(李德懋·1741∼1793)의 손자인 저자 이규경은 평생 저술에 힘써 19세기 최고의 백과사전이라고 할 만한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를 남겼다. 한국고전번역원에서 일부가 번역돼 6책으로 나왔지만 1417개 항목으로 된 이 방대한 백과사전이 모두 번역돼 책으로 찍혀 나오면 20책이 넘을 것으로 보인다.

오주서종박물고변은 원래 10년 전인 1998년에 이미 최주(崔炷·1934∼2001) 교수가 번역해 놓았던 작품이다. 서울대 물리학과를 나와 뒤에 금속공학자가 된 그는 한국과학기술원 교수로 고고(考古)야금학의 권위자였다. 생전에 중국 전통기술의 고전 ‘천공개물(天工開物·1637년)’을 한글로 번역해 낸 것도 바로 그였다. 그는 천공개물에 이어 오주서종박물고변도 한글판을 냄으로써 우리 선조들이 애용했던 옛 기술서 둘을 모두 번역해 낸 훌륭한 업적을 남겼다. 그런데 그가 처음 번역한 ‘천공개물’은 1997년 출판됐지만 이번에 나온 오주서종박물고변은 번역된 지 10년 만에, 그것도 최 교수가 고인이 된 지 7년이 지나서야 책으로 나왔다.

중국의 천공개물이 전통기술의 모든 분야를 망라한 것과 달리 오주서종박물고변은 우리 기술 가운데 금속 및 재료 분야만을 다룬, 양이 훨씬 적은 책이다. 이 책을 보면서 유난스레 느껴지는 사실은 이규경이 평생 아무 벼슬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규경의 조부 이덕무는 요즘 방송극으로 인기가 높은 학자 임금 정조(正祖)의 주목을 받았다. 이덕무는 정조가 규장각을 열자 유득공(柳得恭)·박제가(朴齊家)·서이수(徐理修)와 함께 이른바 ‘4검서(檢書)’로 근무했다는 사실이 제법 알려져 있기는 하다. 규장각에서 내는 책에는 그가 참여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고도 전해진다. 또 중국에 가서 그곳의 문물을 익힐 기회도 있었다.

조부처럼 학자로서 활동적이었던 이규경은 벼슬에는 전혀 나가지 않은 채 연구에만 몰두해 오주연문장전산고와 오주서종박물고변 등의 업적을 남길 수 있었다. 오주(五洲)는 이규경의 호(號)다.

그렇게 보자면 이를 번역한 최주 역시 평생 벼슬이라고는 가까이 한 적이 없는 과학기술자였다. 현대금속기술을 공부하다 보니 전통기술을 알 필요성을 느껴 나이 50을 훌쩍 넘겨서야 한문 공부에 매진해 천공개물과 오주서종박물고변의 번역에 이른 것이다. 그 크기와 무게는 서로 다를지 모르지만 이규경이나 최주 모두 외로운 학문적 노력이 그윽한 향기가 돼 우리에게 남게 된 경우란 생각이 든다.

오늘 우리에게는 수많은 전통 과학기술서가 번역도 되지 못한 채 한문투성이로 남아 있다. 이를 번역하기 위해서는 이미 현대과학기술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새삼 한자를 공부하고 옛 과학기술을 익힐 그런 인재가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 우리 현실은 그것과는 거리가 아주 멀다. 최주 교수의 유작이 10년 만에 책으로 나온 것을 보며 아쉬운 생각이 더해 가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박성래 한국외국어대 사학과 명예교수

[바로잡습니다]칼럼 과학세상에서 규장각 ‘4검서’

△16일자 A27면 칼럼 과학세상에서 규장각 ‘4검서’로 근무한 인물은 이규경이 아니라 그의 조부 이덕무이기에 바로잡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