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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인준 칼럼]광우병대책회의 vs ‘영리한 군중’

입력 | 2008-06-17 03:04:00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가 당선되고 2주 뒤인 1월 2일, 정연주 KBS 사장은 신년사를 통해 “오만한 권력에 대해 가차 없이 비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03년 노무현 정권의 코드인사로 KBS 사장이 됐고 연임까지 한 그가 두 차례의 취임사와 다섯 차례의 신년사 중에서 ‘권력 비판’을 공언한 것은 처음이었다. 정권이 바뀌어도 호락호락 물러나지 않겠다는, 신(新)정권에 대한 도전 선언이었다.

정 사장 휘하의 KBS는 친(親)노무현, 반(反)보수-반한나라당-반이명박, 친북반미로 끊임없이 편파 편향 시비를 낳았다. 2004년 탄핵정국에서 KBS가 보인 ‘노무현 구하기’ 편파방송은 한국언론사(史)에 길이 남을 것이다.

일부 군소신문들도 KBS와 비슷한 성향을 보였지만, 민간신문의 경우는 다양한 사시(社是)나 가치관을 지면에 반영해 독자(讀者)의 선택 또는 심판을 받으면 된다. 하지만 국민 소유의 전파(電波)를 위임받아 독과점 사용하는 공영방송은 공정성 공공성 공익성이 생명이다.

그럼에도 정 사장은 KBS를 좌파 이념의 선전도구처럼 여겼다. 대한민국 역사를 왜곡하거나 폄훼하고, 친북세력과 호흡을 맞추는 프로그램이 ‘정연주 브랜드’로 인식될 정도였다. 반(反)자유-반시장 사회주의 독재자인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세계적 리더십 모델인 양 미화(美化)한 프로그램도 정연주 시대의 KBS를 상징한다.

방송 現체제로 보수정권 포격

정 사장 취임 후 5년간 KBS는 1500억 원의 누적적자를 기록했다. 민간 통신회사는 무인(無人)기지국을 많이 운영하는데, KBS는 연봉 1억 원 안팎의 지방송신소 직원들을 온존시키고 있다. 프로그램의 외주(外注)제작이 늘어나도 이에 상응하는 본사 인력 및 인건비 감축은 요원하다. 노동 강도가 센 민간기업이라면 당연히 구조조정했을 창변족(窓邊族) 고임금 임직원이 KBS에는 적지 않다.

보도(報道)와 경영 양면에서 문제점이 쌓인 KBS에 대해 감사원이 특별감사를 시작하자 이를 ‘공영방송 장악 음모’라며 ‘공영방송 사수(死守)’를 외치는 세력이 있다. ‘광우병쇠고기국민대책회의’라는 이름을 붙인 단체가 어제 서울 도심에서 이 ‘사수 시위’를 주도했다. 노 정권이 정 사장을 연임시켜 가며 KBS를 친노(親盧) 좌파방송으로 만든 것은 ‘공영방송 장악’이 아니었고, 지금 감사원이 감사를 하는 것은 ‘장악 음모’란 말인가. 한마디로 이중 잣대다. 이명박과 한나라당에 정권은 빼앗겼지만 어떻게든 KBS는 좌파 거점으로 붙잡아 두겠다고 말하는 편이 솔직하겠다.

이명박 정부가 MBC를 민영화할 것이라는 소문도 오래됐다. MBC 역시 공영방송으로 분류되지만 노조의 입김이 워낙 강해 ‘노영(勞營)방송’이라는 별칭까지 붙었다. MBC가 실제로 민영화된다면 지금 같은 경영 및 지배 구조는 유지될 수 없다. 아무튼 이 정부가 MBC를 설건드렸다가 혼쭐이 나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성을 과장한 PD수첩의 위력이 정권을 뒤흔들 정도다.

이 정부와 이익을 공유하기 어려운 집단은 이 밖에도 많다. 정부는 ‘교육 자율화와 다양화’를 말부터 앞세웠다가 평등이념으로 한몫 보는 전교조 및 교육계 내부 안주족(安住族)의 ‘안티 이명박’을 부채질했다. 민주노총은 이 대통령에게 반격할 기회를 노리다가 촛불시위에 편승해 다단계 총파업을 시도하고 있다.

6월 10일을 피크로 촛불시위 규모가 줄고 있다. 골수친북수구(守舊)좌파 인물들이 ‘광우병쇠고기국민대책회의’를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세간에 알려진 것도 한 이유인 듯하다. 평생친북운동꾼들이 이명박 정부의 정책을 총체적으로 무력화(無力化)시키기 위해 사실상 ‘모든 문제 대책회의’를 가동하고 있음이 분명해진 것이다.

政治시위 떠나는 시민 늘어

정부는 국민 건강권을 지켜 달라는 보통시민의 소리에 온 힘을 다해 답해야 한다. 생활정의(正義) 차원에서 삶의 질을 추구하는 시민들은 미국의 테크놀로지 전문가 하워드 라인골드가 2002년 저서에서 명명한 스마트 몹스(Smart Mobs·영리한 군중·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들며 여론을 형성하는 적극적인 군중)라 할 수 있다. 국민이 선택한 정권을 타도의 대상으로 삼는 세력이 ‘스마트 몹스’를 끌어들이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미국 쇠고기를 먹는 것은 청산가리를 입에 털어 넣는 것과 같다’는 식의 댓글에 휩쓸리는 사람이라면 진짜 ‘스마트 몹’이 될 자격이 부족하다.

배인준 논설주간 inj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