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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우병 걸리기 전에 굶어죽게 생겼어요"

입력 | 2008-06-17 16:03:00


세종로주변 상인들 "시위 그만" 하소연

16일 오후 8시 서울 광화문의 한 중국음식점.

TV에도 여러 차례 소개됐고 사장이 대기업 연수원에서 강의도 할 만큼 유명한 집이지만 80여석 규모의 식당 내부는 한산했다.

그나마 한 테이블을 차지했던 손님들이 식사를 마치고 떠나자 오후 9시경이 되서는 식당 전체가 텅 비었다.

이 음식점 김 모(50) 사장은 "벌써 한 달 째 이 같은 모습이 반복되고 있다"고 한숨을 쉬었다.

촛불 시위가 한 달을 넘게 계속되면서 서울 종로구 세종로 일대 상당 수 자영업자들이 울상을 짓고 있다.

시위가 있을 때 마다 도로가 통제되고 경찰 병력이 길을 막는 바람에 인근 직장인들이 광화문을 피해 다른 장소에서 저녁 약속을 잡고 있는 것.

촛불 시위 초기에는 '곧 정상화 하려니…' 기대를 가졌다. 그러나 청계천과 시청 앞 광장에서 촛불을 켜는 게 어느 덧 일상처럼 굳어졌다. 직장인들 사이에서도 시위 규모와 관계없이 광화문이 기피 장소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시위 규모가 줄어 큰 불편은 없지만 '광화문은 불편하다'는 편견은 좀처럼 사라질 줄 모른다는 게 인근 자영업자들의 푸념.

음식점, 주점 사장들은 인근 정부 청사나 경찰청 등에 근무하는 손님들이 올 때면 "제발 손 좀 써 달라"고 통사정을 해 보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신세한탄 수준.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인근에서 주점을 운영하는 박 모(45)씨는 "매상이 촛불시위 이전의 30% 수준으로 줄었다"며 "임대료 인건비 등을 내기 위해 적금을 깨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박 사장은 "요즘 같은 분위기에서는 촛불 시위에 반대하는 듯한 의견을 표시하면 '역적'으로 몰릴까봐 어디 가서 하소연도 못 한다"며 "광우병에 걸리기 전에 굶어 죽게 생겼다"고 울상을 지었다.

촛불 시위 덕분에 호황을 누리는 곳도 있다.

광화문 일대 편의점들은 촛불 시위가 있을 때 마다 종이컵과 초를 팔아 막대한 이익을 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광화문의 한 편의점 업체 관계자는 "솔직히 촛불 시위가 앞으로도 대규모로 계속 됐으면 좋겠지만, 그래도 하루 빨리 나라가 평온을 되찾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나성엽기자 cp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