舊여권에 ‘구원의 孫’당내 뿌리는 아직도…
“계파정치 않겠다” 실용적 진보 표방
이념 - 지역따른 합종연횡서 배제돼
孫측 “재충전한 뒤 차기 준비할 것”
《통합민주당 중진은 대부분 손학규(사진) 공동대표를 탐탁지 않게 평가한다. 사석에선 가끔 감정적인 비판도 나온다. 당내 여러 계파 간 합종연횡의 틀에서도 손 대표는 제외돼 있다.》
손 대표가 15, 16일 재선 이상 의원들을 잇달아 만나 국회 등원과 관련한 의견을 들을 때도 반응이 싸늘했다. 겉으로는 이런 저런 명분을 대며 등원 불가를 주장하는 의원이 많았지만 뒤로는 “손 대표가 등원을 거론하니까 오히려 거부감이 생기더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멀게는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이질감에서부터, 가깝게는 당 조직 정비 과정에서 반감을 품게 된 의원이 꽤 많다. 하지만 비판의 껍데기를 벗기다 보면 근저에는 “대권 후보 손학규가 부담스럽다”는 견제의식이 똬리를 틀고 있다.
손 대표는 인물난에 허덕이던 구(舊)여권이 ‘모셔온’ 사람이다. 별다른 대안이 없어서였기도 했지만 대선 흥행카드라는 복선도 깔려 있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대선 과정에서 정동영 김근태 이해찬 유시민 등 기존 거물은 당을 떠났거나 심각한 내상을 입은 반면 밖에서 온 손 대표는 살아남아 당을 이끌고 있다.
이 때문에 잔존세력에겐 손 대표의 영향력과 대중적 인지도가 거북하기 마련이다. 역으로 손 대표에게는 민주당에서의 개인적 정치 실험이 차기 대권을 위한 좋은 발판이 됐다.
그는 ‘저승사자’로까지 불리던 박재승 변호사를 공천심사위원장으로 발탁해 4·9 총선에서 국민의 관심을 끌어 모으는 데 성공했다. 6·4 재·보선도 승리로 이끌었고 개인적으로는 386의원들을 중심으로 ‘손학규계’라는 당내 우호세력도 만들었다.
손 대표는 “진보를 제대로 하려면 국가경쟁력 면에서도 앞서 나가야 한다. 선진이라는 것을 보수 우파에 빼앗기면 진보가 아니다”며 새로운 진보의 길을 역설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적지 않은 한계를 드러냈다는 시각도 있다. 민주당 정서와 다소 동떨어진 견해를 내놓다 보니 사사건건 내부의 견제를 받아야 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를 주장하다 옛 민주당 출신 의원들과 얼굴을 붉힌 게 대표적 사례다.
18대 국회 개원과 관련해서도 손 대표는 “더는 미룰 수 없다. 나 혼자라면 당장이라도 등원하겠다”며 의원들을 설득했지만 자신의 지지기반인 386의원들까지 “손 대표가 현실을 잘 모르고 있다. 차라리 한나라당으로 돌아가라”며 반발하고 있다.
민주당 관계자는 “손 대표가 당과 화학적으로 결합하지 못한 채 주변만 빙빙 돌고 있음을 보여준 사례”라며 “학자 출신이어서인지 약간 이상적이고 교과서적인 정치를 추구하는 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7월 6일 전당대회 이후 한동안 야인으로 지내야 할 손 대표가 대권 주자로 다시 돌아올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손 대표 측은 “계보나 계파 정치를 하지 않는 게 손 대표의 정치 철학”이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현실 정치는 탄탄한 조직력을 요구하고 있다.
손 대표는 대표직을 마치면 당분간 국내에서 재충전의 시간을 가질 예정이라고 말해왔다. 하지만 주변에서는 손 대표가 당 고문으로 있으면서 자신의 싱크탱크 역할을 하고 있는 ‘동아시아 미래재단’을 통해 당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손 대표의 핵심 측근은 “민주당이 어려워지면 또다시 손을 벌릴 수밖에 없다. 상황이 어찌됐건 차기를 꾸준히 준비하는 게 지금 할 일”이라고 전했다.
고기정 기자 ko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