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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강 동네기업]포환 만드는 쓰지타니공업

입력 | 2008-06-20 03:01:00

세계 최고의 포환을 만드는 ‘1인 공장’ 쓰지타니공업의 쓰지타니 마사히사 사장. 2000, 2004년 올림픽 포환던지기 메달리스트들이 모두 쓰지타니 사장이 만든 포환을 사용했다. 사이타마=천광암 특파원

세계적인 포환 제조회사인 쓰지타니공업의 건물 외관. 사이타마 현에 위치한 이 공장은 평범한 이층집처럼 보인다.


《첨단 제조업 강국인 일본에는 다른 나라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독특한 풍경이 하나 있다. 도쿄(東京) 오사카(大阪) 교토(京都) 등 대도시의 준(準)도심에 주택과 함께 뒤섞여 ‘공생’하고 있는 영세 공장들이다. 일명 ‘마치코바(町工場·동네공장)’라고 불리는 곳들이다. 이들 마치코바 중에는 종업원 수가 50명을 넘는 곳도 있지만 대부분은 20명 미만이다. 종업원이라고 해봐야 부인, 동생, 자녀 등 일가족이 전부인 곳도 적지 않다. 전형적인 마치코바는 1층에 공장이, 2층에 사무실이나 주택이 있는 구조다. 장비도 수치제어(NC) 선반과 같은 첨단 공작기계는 찾아보기 어렵고 수동 선반 등 기본적인 공작기계가 주류를 이룬다. 그러나 마치코바의 기술력 앞에는 세계적인 대기업들은 물론이고 미국 항공우주국(NASA)도 고개를 숙일 때가 많다. 고등수학과 첨단 컴퓨터도 풀지 못하는 제조업의 난제들을 타고난 손재주와 수십 년간 기름땀을 흘리면서 체득한 ‘감(感)’만으로 척척 해결해 내는 기적의 마치코바 탐방기를 시리즈로 연재한다.》

感으로 땀으로… ‘올림픽 포환’ 제패한 ‘1인 공장’

‘설마 천하의 도요타자동차가 이런 영세기업 사장을 초청해서 사원 교육을 할까.’

세계적인 포환(砲丸) 제조회사로 알려진 쓰지타니(십谷)공업의 외관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초라했다.

규모로 보나, 외관으로 보나 이웃한 2층짜리 단독주택들과 거의 차이가 없었다. 건물이 더 낡았다는 점이 굳이 차이라면 차이였다.

‘개 조심’ 안내문 옆에 조그맣게 붙어 있는 초인종을 누르고 또 눌렀지만 아무 반응이 없었다.

‘사이타마(埼玉) 현 후지미(富士見) 시 미즈타니히가시(水谷東) 2-57-1.’

주소를 다시 확인해 봤지만 틀림없었다.

주먹으로 유리문을 두드려도 대답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취재를 포기하고 발길을 돌리려는 순간 유리문 출입구가 ‘드르륵’ 열리면서 이 회사 쓰지타니 마사히사(십谷政久·75) 사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일하는 사람이 나 혼자뿐이라 공장 안에서 시끄러운 작업을 할 때는 손님이 와도 잘 모른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 세계 최고의 포환 명장

시커먼 기름때가 낀 장갑을 벗은 그는 우선 2층 거실로 기자를 안내했다.

쓰지타니 사장은 “한국 기자가 우리 회사를 찾아온 것은 처음”이라면서 이곳을 다녀간 기자들에게서 받은 명함들을 내밀었다.

미국 CNN과 로스앤젤레스타임스, 영국 더 타임스, 독일 ARD방송 등 모두 세계적인 지명도를 자랑하는 유력 언론사의 기자들이었다.

일본 중소도시의 주택가에 위치한 허름한 ‘1인 공장’이 어떻게 해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됐을까.

이 회사가 아직 무명(無名)이던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있었던 일이다.

개회식을 앞두고 육상경기 관계자들에게 비상이 걸렸다. 쓰지타니공업이 납품한 연습용 포환이 하나둘씩 사라지더니 개회식을 넘기기도 전에 단 하나도 남지 않고 사라졌기 때문이다.

7.26kg짜리 쇳덩어리를 훔쳐가려고 삼엄한 경비가 펼쳐진 경기장에 침입하는 ‘어리석은 도둑’이 있을 리 만무했다.

‘범인’은 곧 드러났다. 쓰지타니공업 포환의 뛰어난 품질에 반한 선수들이 나중에 본국으로 가져가기 위해 사물함에 챙겨두는 바람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는 쓰지타니공업의 세계 제패를 예고하는 전주곡이었다.

4년 뒤인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본선 진출자 8명의 손에는 한결같이 쓰지타니공업이 납품한 제품이 들려 있었다.

2000년 시드니,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도 금 은 동메달리스트가 사용한 포환은 모두 쓰지타니공업 제품이었다.

○ ‘하이테크’를 압도하는 ‘로테크’

쓰지타니 사장은 “포환은 무게중심이 정(正)중앙에서 조금만 어긋나도 비거리가 1m 이상 줄어든다”면서 “선수들이 우리 회사 포환을 좋아하는 이유는 미세한 오차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비결을 묻는 질문에 쓰지타니 사장은 ‘로테크(Low Technology·첨단기술을 뜻하는 하이테크의 반대말)’라고 간단히 대답하고 1층 공장으로 손을 잡아끌었다.

10평(33m²)이 채 안 돼 보이는 1층 공장 안에는 어느 마치코바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수동 선반 외에는 이렇다 할 공작기계도 보이지 않았다.

공장 바닥에는 핸드볼 공보다 약간 작아 보이는 쇠공이 여기저기 쌓여 있었다.

쓰지타니 사장은 이내 쇠공 하나를 선반에 고정시키더니 전원을 넣었다.

쇠가 쇠를 긁어내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쇠공의 거무칙칙하고 울퉁불퉁한 표면은 매끄럽고 윤이 나는 상태로 변해 갔다.

요란한 절삭음 사이로 쓰지타니 사장의 설명이 드문드문 이어졌다.

“고성능 컴퓨터가 부착된 NC 선반을 이용하면 완벽한 구형(球形)을 만들 수는 있죠. 하지만 쇠 내부의 강도와 밀도가 균일하지 않기 때문에 아무리 완벽한 구형이라고 하더라도 무게중심이 정중앙에 위치하지 않게 됩니다. 나는 쇠가 깎여 나가는 소리, 부위별 빛깔, 핸들을 통해 전해오는 압력 등 3가지를 몸으로 느끼면서 중심을 찾아 나갑니다.”

쓰지타니 사장은 “이런 수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좌절과 실패를 넘어야 했다”면서 “기술이란 실패의 축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 “로테크에는 매뉴얼이 없다”

198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일본은 국제수준에 한참 뒤떨어지는 조잡한 포환밖에 만들지 못했다. 물론 쓰지타니공업도 그런 업체 가운데 한 곳이었다.

“무게중심을 맞추는 것은 고사하고 최소한의 국제규격을 통과하는 것도 힘들었습니다. 약 1년 반 동안 주물공장을 찾아다니면서 쇠의 성질을 기초부터 공부한 다음에야 길이 보였죠.”

현재 쓰지타니 사장에게는 일본의 대기업들뿐 아니라 인도 파키스탄 중국 등에서 기술을 이전하거나 팔라는 요청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인을 통해 음식점으로 불러낸 뒤 현장에서 돈뭉치를 내미는 외국 기업도 있었지만 쓰지타니 사장의 대답은 한결같이 “노(No)”였다.

수십 년 동안 공부와 실전을 통해 감과 몸으로 익힌 기술이기 때문에 매뉴얼로는 전수가 안 된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

도요타자동차가 쓰지타니 사장을 초청하는 데 대한 궁금증은 그의 마지막 한마디에서 말끔히 풀렸다.

“로테크 없는 하이테크는 없습니다.”

사이타마=천광암 특파원 i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