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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이런 것까지]로봇 수집가 백성현 교수

입력 | 2008-06-20 03:03:00

로봇 수집가 백성현 교수가 10년 넘게 세계 각국에서 모은 로봇들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1926년 제작된 SF영화 ‘메트로폴리스’에 출연한 최초의 여자 로봇 주인공 마리아. 백성현 교수는 “이 로봇은 프랑스의 영웅 잔 다르크를 모델로 했다”고 설명했다.


“잔 다르크, 첫 로봇SF영화 모델”

“과학이 로봇의 아버지라면, 예술은 어머니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오로지 로봇의 기능만을 따지려는 경향이 있어요. 그런 측면에서 우리네 로봇 문화는 절름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흔히 사람을 똑같이 흉내 내는 로봇을 보면 경이로움을 느낀다고 말한다. 그리고 로봇을 사람과 비슷하게 만든 기술에 주목하기 마련이다.

10년 넘게 세계 각국을 돌며 로봇을 수집해 온 백성현(57) 명지전문대 커뮤니케이션디자인과 교수는 색다른 로봇관(觀)을 추구한다. 로봇을 기술로만 이해할 것이 아니라 인간의 상상력과 문명 발전이 낳은 하나의 문화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잔 다르크가 SF영화 여주인공의 모델

“프랑스의 영웅 잔 다르크가 최초의 로봇 SF영화 ‘메트로폴리스’의 주인공 ‘마리아’와 훗날 다른 로봇의 모델이 됐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기적을 행한 인물이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로봇의 모델이라는 점이 흥미롭지 않나요?”

백 교수가 로봇과 인연을 맺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초. 그림과 고서 수집에 남다른 조예가 있었던 그에게 어느 날 뜻밖의 제안이 들어왔다.

“한 은행에서 저금통 박물관을 만들어 달라는 제의를 받았어요. 고대 로마시대의 저금통에서부터 세계 각국의 온갖 저금통을 수집하다 우연히 로봇 저금통을 발견했죠.”

동전을 집어 구멍에 넣는 기계팔의 정교한 동작에 그는 금방 반해 버렸다고 한다. 곧장 수집 대상에 로봇을 올렸다. ‘초짜’ 수집가는 로봇을 구하기 위해 안 가본 곳이 없다.

해외의 유명 재래시장은 기본이고 한국인이 찾지 않는 국제 경매장도 기웃거렸다. “왜 장난감을 수집하느냐”는 주변의 따가운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세계 40개국에서 모은 백 교수의 컬렉션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수집품 목록에는 1900∼1910년 독일에서 만든 최초 태엽로봇을 포함해 1960, 70년대를 구가한 앤티크 로봇, 인도 홍콩 등에서 만든 희귀 로봇들이 그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2004년 5월 그는 그동안 모은 로봇 1만 점 중에서 3500점을 추려 서울 대학로 뒷골목에 로봇박물관을 열었다.

○경매시장에서 몸값 급부상 중

“무조건 긁어모은 것은 아니에요. 먼저 ‘상상력’이 얼마나 번득이는지, 그 뒤에 ‘비주얼(시각효과)’과 ‘기능’을 봐요.”

백 교수는 과학자들이 내세우는 첨단 로봇에는 별 관심이 없다. 오히려 아이디어가 번득이고, 먼지 묻고 뭔가 사연이 있을 것 같은 로봇에 더 눈길을 준다.

그는 “직접 보고 만질 수 있는 로봇이야말로 인간에게 상상력과 영감을 심어 줄 수 있는 효과 만점의 과학 콘텐츠”라고 했다. 실제로 1970년대 후반 생산된 로봇 장난감 갤럭시는 훗날 일본 혼다가 개발한 휴머노이드 로봇 ‘아시모’에 영감을 줬다.

백 교수에 따르면 국제 경매시장에서 로봇은 요즘 최고의 몸값을 구가하고 있다. 미국 뉴욕 소더비 경매는 1960, 70년대 생산된 앤티크 로봇을 구하려는 마니아들로 해마다 문전성시를 이룬다. 신흥 경제대국 중국과 인도 수집가들이 수집 대열에 뛰어들면서 값은 20배씩 뛰었다. 원래는 기계 문명이 시작된 유럽에서 먼저 시작됐지만 요즘은 정보기술(IT)이 발전한 아시아권이 앞서기 시작했다.

“미래는 ‘깊이’ 있는 콘텐츠가 가치를 인정받는 ‘뎁스 오션(Depth Ocean)’ 시대입니다. 그때 비로소 제가 모은 풍부한 로봇 컬렉션이 빛을 볼 거라고 생각해요.”

박근태 동아사이언스 기자 kunt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