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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RO2008생생토크]히딩크, 선수 잠재력 읽는 눈 탁월

입력 | 2008-06-20 03:03:00


국경 뛰어넘어 ‘축구하는 법’ 전파

유로 2008이 마치 남의 나라 일처럼 느껴지는 한국 팬들이 있다면 월드컵 영웅 거스 히딩크 감독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마라.

히딩크는 19일 러시아를 8강에 올려놓으며 한국 팬들에게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의 추억을 되돌려 놓았다. 히딩크는 ‘히딩크’이기 때문에 계속 또 다른 목표를 추구한다. 그는 감독으로서 최고 자리에 올랐지만 계속 다른 도전을 찾아 나선다.

히딩크는 정몽준 대한축구협회장과 같은 철학을 가지고 있다. 만일 그 둘에게 “뭔가 잘 안 될 것 같다”고 하면 당장 “안 되는 게 어디 있느냐”라는 대답을 듣게 될 것이다.

2002 한일 월드컵이 열리기 오래 전에 히딩크가 한국 선수들에게 유럽 스타일의 축구를 강요할 때 나는 그에게 “당신은 불가능에 도전하는 것 아니냐”고 한 적이 있다. 그러자 그는 웃음 띤 얼굴로 “진짜 불가능할 것 같으냐”며 “당신이 잘못 판단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해냈다.

나는 그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다. 그래서 유로 2008에서 러시아가 8강에 들지 못할 것이란 섣부른 전망을 하지 않았다. ‘히딩크의 아이들’이 스페인에 1-4로 진 뒤 히딩크를 빼고 러시아가 그리스와 스웨덴을 꺾을 수 있다고 믿었던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 것인가.

이제 러시아는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무너뜨린 네덜란드를 8강전에서 만났다. 히딩크와 그의 조국이 만나는 것이다. 과연 히딩크는 네덜란드를 무너뜨릴 마법을 또 부릴 것인가.

선수들에게 스포츠는 이기고 지는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히딩크에게는 문화와 언어를 넘어 선수들에게 ‘축구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길을 찾는 과정이다.

히딩크는 스페인에 대패한 뒤 “이제 장기간 업무 수행의 출발일 뿐이다”라며 “선수들이 현대 축구를 너무 몰랐다”고 솔직히 말했다. 그리스와 두 번째 경기가 끝난 뒤에는 “이제 좀 발전했다. 하지만 스웨덴은 경험 많은 선수가 많다”고 여전히 엄살을 부렸다.

히딩크는 언론을 통해 자신의 의도를 전파하는 ‘교활한 여우’다. 스웨덴 선수들이 경험이 많다면 러시아는 패기가 넘친다. 한일 월드컵에서 한국을 4강에 올렸을 때, 2006년 독일 월드컵 때 호주를 16강에 진출시킬 때도 비슷한 언론 플레이를 했다.

히딩크는 터치라인 밖에서 말하고 제스처를 써가며 커뮤니케이션 한다. 마치 어린 선수들을 지도하는 12번째 선수처럼. 히딩크는 키 큰 금발의 로만 파블류첸코가 선제골을 터뜨렸을 때 극도로 만족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선수들이 기회를 계속 만들고 놓쳤을 땐 극도로 흥분했다. 안드레이 아르샤빈이 추가골을 터뜨리고 승리를 확신하고 나서야 흥분을 가라앉혔다.

러시아 선수들의 능력이 부족했다면 히딩크는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선수들의 능력을 발견하고 때로는 선수들을 윽박지르듯 설득해 끌고 가 그들이 평생 잊지 못할 기억을 남겨주는 게 히딩크의 능력이다. 스웨덴을 제압하고 서로 얼싸안으며 기쁨을 만끽한 선수들은 평생 이날을 잊지 못할 것이다.

랍 휴스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잉글랜드 칼럼니스트 ROBHU800@ao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