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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속의 오늘]1960년 사상 첫 경찰 데모

입력 | 2008-06-21 03:01:00


지금부터 48년 전,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대규모 시위가 있었다. 육하원칙으로 나눠서 정리해 보자.

①언제?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이 한국을 떠난 다음 날이었다. 그는 거족적인(擧族的)인 환영을 받으며 6월 19일 도착했다가 28시간을 머물고 20일 귀국길에 올랐다.

②왜?

반미 시위가 아니었다. 정치적 동기에서 비롯됐다고 말하기 어렵지만, 따지고 보면 전혀 아니라고 얘기하기도 곤란했다.

③어디서?

종로구 세종로 중앙청(옛 국립중앙박물관 자리) 광장에 지방 출신을 중심으로 6000여 명이 모였다.

국무총리가 참석한 해단식이 오전 9시에 끝났지만 모두 주저앉아 10시 반경부터 집회를 시작했다.

④무엇을?

서울 근무자가 “경찰은 중립화되어야 한다”고 연설한 뒤 경남 대표가 결의문을 읽었다. ‘옳소!’라는 구호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들은 중구 태평로의 국회(현 서울시의회 건물) 앞까지 행진하면서 외쳤다. ‘불량아 김○○를 몰아내자!’

시경국장이 현장에 나가 “15분 이내에 해산하지 않으면 15사단을 동원하겠다”고 경고했다.

치안국 경비과장은 “법을 지켜야 할 사람들이 법을 지키지 않으면 어떻게 되느냐”고 설득했다. 오후 2시 반경부터 사태가 수습돼 모두 원래 근무지로 돌아갔다.

⑤누가?

시위대가 거론한 김○○는 의원이었다. 20일 오후에 차를 타고 국회로 갈 때 세종로 일대에서 아이젠하워 대통령 경호경비를 맡은 경찰이 막았다.

통행증이 없으니 걸어가도록 권유하자 김 의원은 서모 경감의 뺨을 때리며 일갈했다. “4·19 이전의 경찰 근성을 버리지 못하는 개새끼.”

경찰관들은 이야기를 전해 듣고 흥분했다. 서 경감과 함께 서울에 지원 나온 부산 출신을 중심으로 해단식 때 실력행사에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⑥어떻게?

사상 첫 경찰관 시위에 대해 이호 내무장관은 “경찰관이 데모를 한다는 것은 언어도단으로 선동한 자를 조사하여 처벌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부산지검은 “주동자가 자유당 치하 사찰 계통의 경찰관들로 과도정부에 대한 불만을 품고 저질렀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주동자 3명을 6월 24일자로 파면하고 다음 날 총경 9명을 전보조치했다.

(촛불집회 과잉진압 논란으로 경찰이 코너에 몰렸다. 참다못한 이들이 집단행동에 나서는 일이 없기를.)

송상근 기자 songm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