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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세상/정광화]과학은 실패를 먹고 자란다

입력 | 2008-06-23 02:57:00


올해 4월 19일, 한국 최초의 우주인 이소연 씨가 탑승한 러시아 소유스 TMA-11호의 지구 귀환 TV 중계를 지켜보던 국민은 우주선이 원래 계획된 곳보다 약 420km 떨어진 곳에 착륙해 무사히 구조된 소식을 듣고 환호했다.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소유스 TMA-11호의 귀환은 상당히 위험했으며 이 씨는 착륙 시의 충격으로 한동안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했다. 만약 사고라도 났다면 어찌됐을까. 아마 관계자들은 문책 받고 우주개발 계획은 포기했을 가능성이 높다.

지구 정지궤도를 가득 메운 미국 위성들 덕분에 세계 어느 곳에서든 휴대전화 통화가 가능하고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축구경기의 실황중계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 또 미국은 달에도 사람을 보냈고 화성과 목성도 탐험한다. 우리에게는 미국 우주개발의 화려한 성공만이 보인다. 그러나 미국의 우주개발도 참으로 험난한 길을 걸었다.

1957년 소련이 첫 번째로 지구를 도는 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쏘아 올리자 자존심이 상한 미국은 달에 사람을 착륙시킨다는 목표를 세우고 우주개발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달 탐사를 위해 1958년 최초로 발사된 파이어니어 0호는 발사 77초 후에 폭발했다. 이어 쏜 1, 2, 3호 모두 실패하고 1959년 파이어니어 4호에 가서야 달 탐사에 성공했으며 그 뒤로 9호까지 발사하며 달 여행에 필요한 자료를 수집했다.

달 여행에 필요한 사전탐색을 끝내고 사람을 보내기 위한 아폴로 계획이 시작됐다. 그러나 1967년 아폴로 1호는 발사하기도 전 산소로 차 있는 우주선 안에 불이 붙어 우주인 3명이 불에 타 죽었다. 그래도 아폴로 계획은 계속됐고 드디어 1969년 아폴로 11호를 타고 닐 암스트롱이 세계 최초로 달을 밟았다. 1986년 최초의 여성 우주인을 태운 챌린저 우주왕복선은 발사 73초 만에 공중에서 폭발해 승무원 7명 전원이 숨졌다. 그러나 태양계를 향한 미국의 우주개발은 지속되고 있다.

미국보다도 러시아는 더 많이 실패했다. 우주개발 도중에 100여 명이 숨졌으며 아직도 위성발사는 20% 정도의 사고율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6년에도 우리나라 아리랑 2호 발사 바로 이틀 전에 우리나라 소위성을 탑재한 드네프르 로켓이 타버려 당시 과학기술부와 관계자들을 바짝 긴장하게 했다.

우주개발만 아니라 모든 과학기술분야가 매우 위험한 도전이다. 과학기술은 미지의 세계를 탐구하는 것이다. 도처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현대인은 과학기술이 주는 혜택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과학기술이라는 나무는 도전정신, 탐구정신을 가진 수많은 사람의 수세기에 걸친 희생과 실패의 무덤에서 제공되는 기름진 비료 위에서 자라 인류에게 문명의 혜택이라는 달콤한 열매를 주고 있는 것이다.

선진국 따라잡기 전략으로 선진국 문턱에 온 우리 정부는 과학기술연구에서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다. 효율성을 추구한 관리 위주의 과학기술정책이 이루어진 결과다. 지금까지는 나름대로 타당한 정책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따라잡기 연구에서 실패는 선진국의 선행연구에 대한 공부를 게을리 했다는 방증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국민소득 4만 달러 시대로 진입하려면 남이 안 해본 일을 하고 남이 안 가본 길을 가야 한다. 이제는 무조건적인 일이 아니라 사색하고 탐색할 여유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과학자들을 관리하고 흔드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놓아줄 필요가 있다. 실패를 용인할 뿐 아니라 격려해 주는 문화가 필요하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우수한 결과가 나오고 신성장 동력도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정광화 한국표준과학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