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관계 핵심인사 공개 문제제기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을 국내총생산(GDP) 대비 5%로 확대하겠다는 정부 공약(公約)은 실현 가능성이 없는 공약(空約)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문가들의 분석이 나왔다.
이는 최근까지 정책결정과정에 참여했거나 현재 활동하고 있는 정관계 핵심 인사들로부터 공개적으로 제기된 것이어서 그 파장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경제 2분과에서 자문위원으로 활동한 전승준(화학과) 고려대 교수는 20일 “R&D투자 GDP 대비 5%확대와 기초연구 50% 지원 공약은 정부 정책에 확실히 반영하기 위한 상징적 의미로 제시한 것일 뿐, 뚜렷한 실천 계획을 설정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전 교수는 이날 서울 강남구 역삼동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R&D투자 GDP대비 5% 확대, 무엇이 문제인가’ 포럼에서 “R&D투자를 안정적으로 고정시켜야 10~20년 뒤 한국도 선진국의 대열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하고 이 같은 공약을 냈다”며 “인수위 활동 당시 구체적인 투자 목표와 재원 마련 방법까지 고민하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 5월 국가 연구개발 투자를 2012년까지 GDP대비 5%까지 점차적으로 늘리고 예산 중 기초원천 분야의 비중을 현재 25%에서 50%까지 확대하겠다고 발표했었다.
이와 관련해 기획재정부 송병선 연구개발예산과장은 “지난 10년간 한국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5%정도였지만 R&D의 연증가율은 10%가 넘었다”며 “정부가 이 정도 수준의 R&D투자를 언제까지 계속할 수 있을지 확실하지 않다”고 인정했다.
교육과학기술부 이상목 과학기술정책실장도 “2008년 25% 수준인 기초연구에 대한 지원을 2012년까지 50%로 확대하려는 목표가 현실적으로 실현하기 쉽지 않다”며 “민간 R&D투자 비율을 높여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했다.
전직 인수위원과 정부 관계자의 이 같은 언급은 R&D투자 확대 방안이 구체적인 투자 기준과 재원 마련 방안을 세우지 못한 상태에서 성급히 발표된 공약임을 공개석상에서 처음으로 인정한 것이다.
●GDP 증가하면 국가 R&D 투자율 떨어져
이날 과학계 관계자들은 정부가 민간 투자를 확대해 R&D 규모를 늘리겠다는 구상도 현실을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토론자로 참석한 박영일(전 과학기술부 차관)이화여대 교수는 “정부가 민간 R&D의 비율이 꾸준히 성장할 것으로 가정해 GDP대비 5%의 국가 R&D를 설정했지만 민간이 이를 따라오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가 이날 제시한 자료는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이 2007년 발표한 OECD 주요국의 R&D 투자 현황을 분석한 자료인데, 경제 규모가 커질수록 민간 R&D투자 증가폭도 둔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1990년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2만 달러였던 일본의 경우 1994년까지 GDP대비 총연구개발비(GERD)가 2.96%에서 2.79%로 떨어졌다. 같은 기간 민간의 R&D 투자율도 73.1%에서 68.2%로 줄었다. 프랑스와 독일, 영국 등 한국과 민간 R&D 투자 비율이 비슷한 나라들도 같은 현상이 나타났다.
이 보고서는 또 정부가 GDP 대비 R&D 투자 5%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공공부문의 투자 비중을 현재의 24.3%에서 30%로 더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에 대해 박 교수는 “부처간에 기초 연구와 원천기술에 대한 정의조차 서로 다른 상황에서 투자에 혼선을 빚고 있다”며 “먼저 R&D 투자 대상을 명확히 한 뒤 대규모 투자에 대한 국민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고 했다.
LG경제연구소 김영민 상무는 “기초연구에 R&D 지원 비율을 50%까지 올리겠다는 공약은 바람직하지만 무늬만 기초일수 있다”며 “수치상으로 GDP대비 5%, 기초과학 50% 지원일 뿐 R&D투자의 남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R&D투자 확대 중소기업 연구 지원에 달려
이날 토론회에서는 민간 R&D 투자를 늘리기 위한 각계의 방안이 제시됐다. 중소기업 연구원 김광희 전문위원은 “민간 R&D투자의 거의 50%는 상위 10개사가 점유하고 있다”며 “대기업 중심에서 중소기업 중심으로 R&D투자의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 최재익 부회장은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R&D투자를 할 경우 세제를 감면해 주고, 고급두뇌의 병역특례전문요원을 중소기업에 우선 배당해야 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 지식경제부 이창한 산업기술정책관은 “미국과 일본의 R&D 전략이 우수하다고 따라하는 게 맞는지 깊이 있는 논의가 부족했다”며 “대학과 출연연, 기업의 합의가 전제된 R&D 효율성 제고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서금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symbio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