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 기다려지는 행복한 나무여행/고규홍 지음/터치아트
《“나무에는 사람살이가 깃들어 있게 마련이다. 사람보다 오래, 사람의 자리를 지키고 서 있는 까닭이다. 몇백 년 정도 살아온 나무들은 바로 곁에서 일어났던 사람살이의 모든 것을 지켜보았을 게다. 나무 아래에서 옛사람들을 추억하는 것은 그런 뜻에서 새롭다. 달리 이야기하면, 사람들의 삶 안에서는 나무 없이 이뤄진 것은 하나도 없다고 해도 틀리지 않는다.”》
나무 보러 가자는 이야기다. 나무 중에서도 나이 많고 커다란 나무를 뜻하는 노거수(老巨樹)를 만나 보자는 이야기다. 전국의 노거수는 260그루. 코스마다 다섯 그루씩 나무 여행 52코스를 소개했다.
방방곡곡에 나무 없는 곳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책장을 넘기다 보면 나무의 진짜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은 별로 없음을 깨닫게 된다.
저자가 이 알토란 같은 나무 여행 가이드를 내기까지 9년이 걸렸다. 그동안 저자는 전국의 나무를 찾아다녔다. 나무에 얽힌 역사를 꼼꼼히 기록하고 쉬운 말로 풀어냈다.
나무 소개와 별도로 나무 찾아가는 길을 친절하게 알려줘 다음 나무까지 가는 길과 거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집에서 편히 앉아 읽을 책이 아니다. 책을 손에 쥔 독자, 이미 길을 떠나고 있어야 한다. 나무마다 저자가 직접 찍은 사진도 실어 이 책만 있으면 전국 어느 나무라도 쉽게 찾을 듯하다.
명산 설악산에서 명품 나무 낙산사 소나무(강원 양양군)를 만난다. 의상 대사가 수도했다는 절벽 위에 세워진 의상대. 볼거리는 의상대만이 아니다. “동해로 펼쳐지는 푸른 기상의 의상대 앞 절벽 쪽에 독야청청 푸름을 자랑하는 소나무 한 그루가 있다. 이른 아침 동해를 붉게 물들이며 떠오른 태양의 기운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이 땅의 푸른 나무다.”
강원 삼척시에는 고려 마지막 임금 공양왕(1345∼1394)의 최후를 지킨 나무가 꿋꿋이 서 있다. 천연기념물 363호로, 키가 20m에 이르고 둘레가 5.2m에 이르는 마을의 수호신이다. 이 나무가 있는 곳은 공양왕이 죽기 직전 살았던 집이 있던 자리. 공양왕은 나라를 잃은 뒤 강원도 원주로 추방됐는데 위협을 피해 이곳까지 왔다가 살해당했다. 나무는 600년 전 고려 마지막 임금의 최후를 목격했으리라.
경남 하동군에서는 신라 대학자 최치원이 심었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나무를 만난다. “최치원은 세속 번거로움을 버리고 산으로 들어가면서 자신의 지팡이를 개울가에 꽂아 두고는 이 지팡이가 나무로 살아 자라나면 자신도 어디엔가 살아 있을 것이고 나무가 죽으면 자신도 죽은 것으로 알라고 말했다.” 저자는 “아무리 많이 봐도 400세쯤밖에 안 보이지만 옛사람의 이야기를 빌려 나무를 소중히 지키려는 마을 사람들의 정성이 더 고맙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저자가 찾아다닌 건 나무 그 자체가 아니라 나무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이리라.
여행작가 유연태 씨는 이 책을 추천한 이유로 “이 책을 보고 나서야 마을 입구마다 오랜 세월 풍상을 이겨내면서 마을의 안녕을 지켜주는 보호수들의 내력과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절집, 돌탑만 우리 문화유산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