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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건축]‘섹스 앤 더 시티’

입력 | 2008-06-25 02:57:00

한 해 120만 명이 드나드는 뉴욕공공도서관의 중앙열람실. 화려한 장식과 웅장한 공간감을 강조하는 보자르 건축양식이 잘 드러나 있다. 사진 제공 뉴욕공공도서관


보자르 양식 뉴욕공공도서관

글쟁이에겐 ‘꿈의 결혼식장’

‘섹스 앤 더 시티’는 ‘여자들끼리 가서 봐야 하는 영화’로 소문났습니다. 시사회에 혼자 가서 봤는데 30대 싱글남에게는 하품 나는 얘기더군요. 딱 한 장면만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주인공 캐리(세라 제시카 파커)는 뉴욕공공도서관에 들렀다가 직원들이 분주하게 결혼식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곤 자신도 거기서 결혼하겠다고 결심합니다. 구석구석 품격이 흘러넘치는 도서관은 글로 먹고사는 뉴요커에게 꿈의 결혼식장이 될 만하죠. 부동산업자인 피앙세에게 의견을 물을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 것은 눈에 거슬렸지만 말입니다.

뉴욕공공도서관 본관은 뉴욕 42번가 5번 애비뉴에 있습니다. 1895년 존 카레리와 토머스 헤이스팅스가 설계를 맡았습니다. 전례가 없는 훌륭한 공공시설 계획안으로 환영받았으며, 1899년 공사를 시작해 1911년 5월 23일 개관했습니다. 공사 비용은 900만 달러.

이 건물은 디자인에서 프랑스 보자르(Beaux-Arts) 건축양식의 장점을 잘 살렸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19세기 파리의 미술학교 ‘에콜 데 보자르’에서 기원한 보자르 양식은 근현대 프랑스와 북미 건축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넓은 출입구와 계단 홀을 지나 메인 공간으로 향하는 ‘계층적’ 좌우대칭형 공간 배치가 보자르 양식의 특징입니다. 입구와 난간에는 대형 조각 등 장식을 두고 벽면에는 소용돌이무늬 장식이 많이 들어갑니다. 파리 루브르박물관의 르퓌엘 관, 트로카데로 궁전, 오르세 미술관, 샤이요 궁이 보자르 양식을 따랐습니다. 미국에선 뉴욕 그랜드 중앙역과 샌프란시스코 전쟁기념 오페라하우스를 들 수 있습니다.

부피가 1만5000m³에 이르는 뉴욕공공도서관은 완공 당시 미국에서 가장 큰 대리석 건물이었습니다. 고대 그리스, 이탈리아 르네상스, 프랑스 보자르 양식이 뒤섞인 화려한 건물이죠. 긴 복도와 커다란 계단을 따라 중앙의 웅장한 열람실로 오르는 길이 드라마틱합니다.

영화 ‘섹스…’에서 캐리는 불행히도 도서관 계단에서 피앙세에게 버림받아 식장까지 들어가지 못합니다. 결말에서 화해하고 다시 식을 올리지만 ‘꿈의 결혼식장’은 그냥 꿈으로 남겼네요.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