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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패션]올여름의 유혹, 섹시한 화이트 룩

입력 | 2008-06-27 03:12:00


《“흰 티셔츠 하나 걸쳤을 뿐인데….” 누군들 흰 티셔츠 하나만으로도 멋지지 않고 싶을까. 문제는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없는 자에겐 박탈감만 안겨주는 저 한 마디가 이번엔 할리우드 스타 브래드 피트와 앤젤리나 졸리 부부에게서 불거져 나왔다. 지난달 말 마이애미 한 해변가에서 이들이 데이트를 즐기는 모습이 파파라치에게 포착됐다. 이 사진은 인터넷을 통해 급속도로 퍼졌다. 이를 접한 누리꾼들은 “멋지다” “예쁘다”는 말과 함께 “씁쓸하다”는 반응도 나왔다. 이들은 흔한 장신구 하나 걸치지 않은 채 흰 티셔츠에 흰 반바지, 흰 운동화로 대표되는 ‘화이트 룩(White Look)’ 차림이었다. 수수하기 그지없는 ‘티셔츠-반바지’ 조합도 스타 부부에겐 더없이 멋진 ‘리조트 룩’으로 거듭난 것이다. 하지만 “왜 난 졸리-피트 부부처럼 멋지지 않은 걸까”라며 ‘조상 탓’만 하기엔 너무 무책임한 것은 아닐는지. 100년 가까이 이어져온 패션계 정설 중 하나는 바로 ‘기본에 충실하라’였다. 제아무리 빨강 노랑 핫 핑크로 튀어보려 해도 흰 숏 팬츠 차림의 패리스 힐턴이, 흰 티셔츠 소매를 돌돌 만 정우성이 여름만 되면 가장 섹시하게 보이는 이유는 한결같다. 가장 기본 패션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태양이 이글거리는 올여름. 패션계의 화두는 화이트 룩이다. 졸리-피트 부부만큼 당당하게, 혹은 영화 ‘리플리’에서 흰 와이셔츠를 뽐냈던 토머스 리플리(멧 데이먼)처럼 섹시하게 태양에 맞서는 방법을 알아봤다.》

● 화이트? 화이트! ‘퓨어 화이트’

흰 티셔츠와 흰 와이셔츠, 흰 반바지 등 온통 흰색 패션인 ‘퓨어 화이트’ 스타일은 여름이면 등장하는 ‘마린 룩(흰색 바탕에 푸른색 줄무늬를 얹은 마린보이 패션)’에서 흰색을 극대화한 것이다. 파리, 밀라노의 ‘미니멀리즘’ 디자이너 패션쇼에서나 볼 법한 이 유럽풍 스타일은 ‘적어도 3색’이라 고집하는 국내에선 그동안 도전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올해는 되도록 새하얗게 연출하는 것이 과제가 된 듯 여기저기서 민무늬 흰색 여름 상품들이 쏟아지고 있다. 인터넷쇼핑몰 ‘옥션’의 홍숙 패션팀장은 “셔츠, 반바지, 신발, 가방 등 여름상품용 ‘화이트 컬러’를 주제로 한 제품 판매량이 지난달보다 50%나 늘었다”고 말했다. 현재 옥션 내 ‘퓨어 화이트’ 스타일은 총 1만1000여 건이 등록돼 있다.

최대한 슬림하게 연출하는 것이 올여름 화이트 룩 연출법의 핵심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다리 하나가 더 들어갈 정도로 펑퍼짐한 반바지가 유행한 것과 달리 최근에는 5부, 7부 반바지의 경우 폭이 좁은 ‘스키니 핫팬츠’가 인기다. 여기에 벨트를 하지 않은 ‘노 벨트(No belt) 룩’도 인기를 끌고 있다.

‘얼마나 슬림하게 연출하느냐’가 올여름 화이트 룩의 과제라면 연출 방법에 따라 ‘맛’이 달라질 수 있다. 스타일리스트 채한석 씨는 “흰 반팔 셔츠를 입을 때 소매를 걷고 입으면 볼륨감과 활동적인 느낌을 줄 수 있다”며 “가방이나 시계 등의 액세서리를 추가해 스타일을 완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퓨어 화이트 룩에 어울리는 갖가지 흰색 소품도 나왔다. 하얀색 ‘캔버스’ 가방을 비롯해 캐주얼브랜드 ‘컨버스’에서 이달 내놓은 여름용 스니커즈인 ‘컨버스 화이트’, 구두 브랜드 ‘소다’의 ‘서머 컴포트 로퍼’, DKNY의 ‘화이트 워치’ 등은 최대한 흰색만을 강조해 간결함을 부각했다.

● 화이트에 점 하나만 찍으면… ‘화이트+악센트’

‘캘빈클라인 진’은 올여름 패션으로 ‘화이트 룩+데님’ 스타일을 공개했다. 흰색 반바지, 흰 셔츠와 흰 티셔츠에 청바지나 청 크롭트 재킷을 걸쳐 청색 포인트를 둔다는 것으로 이는 다소 심심해 보이는 화이트 룩에 일종의 악센트 역할을 한다. 그런가 하면 캐주얼브랜드 ‘라코스테’에서는 핫 레드 벨트, 빨간색 물방울 무늬, 빨간 스니커스 등 화이트 룩에 채도가 높은 빨간색을 추가해 보는 재미를 더했다.

LG패션 ‘해지스 레이디스’의 정보연 디자인실장은 “올봄 ‘맥시멀리즘’으로 대표되는 원색 패션이 인기를 얻었고 이런 분위기는 올여름 ‘흰색+원색’ 조합의 눈부신 의상들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흰색+푸른색’의 마린 룩이 ‘원색 마린 룩’ 형태로 바뀐 것이다. ‘디젤’의 경우 노랑 초록 등의 원색과 흰색을 섞은 여름 의상들을 공개했다. 세탁기 속 세제와 빨래가 함께 뒤섞여 돌아가는 모습에서 영감을 받았다.

패션 관계자들은 ‘원 포인트 악센트’ 패션, 즉 화이트 룩에 한 가지 원색 악센트를 두는 것을 강조했다. 정 실장은 “원색 악센트가 많아질수록 오히려 번잡스러워 보인다”며 “초록색 벨트나 파란색 가방, 주황색 신발 등 원색 소품 하나만 과감하게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흰색+원색’의 눈부심이 부담스럽다면 채도가 낮은 중간단계 색 하나를 곁들이는 것도 좋다.

● 테마가 담긴 화이트 룩… ‘화이트+아티스트’

단순한 흰 티셔츠, 흰 반바지를 입는 시대는 지났다? 올여름 화이트 룩의 또 다른 유행은 ‘다양한 주제’에 있다. 일본 캐주얼브랜드 ‘유니클로’는 지난달 영화배우 강혜정, 모델 장윤주 등 5명의 국내 스타와 미국 아티스트 키스 헤링, 바스 키아가 직접 디자인한 티셔츠로 티셔츠 프로젝트 ‘UT 전시회’를 열었다. 판매수익금을 불우이웃 돕기 성금으로 사용한다는 말에 공개 한 달 만에 8000장이 팔렸다.

또 여성복 브랜드 ‘구호’에서는 시각장애 어린이들의 개안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디자이너 정구호, 모델 송경아 등이 직접 흰 티셔츠에 디자인한 ‘하트 포 아이’ 티셔츠를 700장 한정 판매했다. ‘베이직 하우스’는 티셔츠 ‘Re-T’의 판매수익금으로 캄보디아 오지 마을에 15개의 우물을 파는 캠페인을 하고 있다. 남성복 전문 디자이너 장광효 씨는 건전음주 캠페인을 위해 ‘슬로우 슬로우 퀵 퀵’이라는 문구가 담긴 티셔츠를 만들기도 했다.

티셔츠뿐만이 아니다. 미국 캐주얼 브랜드 ‘갭’은 미국패션디자이너협회(CFDA)와 패션지 ‘보그’ 패션펀드와 함께 신진 디자이너 육성 캠페인인 ‘갭 디자인 에디션’을 벌이며 신인 디자이너들이 만든 흰 셔츠를 저렴한 값(7만 원부터)에 내놓았다. 또 ‘친환경’이 패션계 화두로 떠오르면서 캠페인 표어가 써진 흰 캔버스 백도 화이트 룩의 대표 격으로 떠올랐다. 영국 출신 디자이너 애냐 힌드마치가 비닐봉지 사용을 줄이자며 500개 한정으로 만든 캔버스 백 ‘아임 낫 어 플라스틱 백’이 대표적이다.

이렇듯 최근 화이트 룩은 마치 하나의 커다란 ‘캔버스’로 여겨 다양한 아티스트가 다양한 협업을 통해 갖가지 주제를 얹어놓는 양상으로 발전하고 있다. 스타일리스트 송채연 씨는 “멀티 시대, 하이브리드 시대를 사는 소비자들에게 화이트 룩은 단순히 패션을 넘어선 하나의 ‘놀이’와도 같다”며 “티셔츠 한 장이라도 의미 있는 것을 입고 싶어 한다”라고 말했다.

● 나를 알아야 화이트 룩도 알 수 있다?

올여름 화이트 룩의 부상에 대해 패션 관계자들은 “원색 패션이 여름까지 이어지면서 화려한 색감을 받쳐줄 흰색이 필요했다”라며 “단순한 흰색이 아닌 핫핑크 같은 채도가 높은 색과 어울릴 수 있는 밝은 흰색이나 형광 빛이 감도는 흰색으로 이루어진 화이트 룩이 인기를 끌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경량감으로 대표되는 쿨 비즈가 20대 이상 직장 남성의 여름 패션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최대한 가볍게, 최대한 시원하게 연출하는 것이 여름 패션의 과제로 떠올랐다. 삼성패션연구소 노영주 책임연구원은 “경기 불황 때 스커트 길이가 짧아지는 것처럼 색깔 역시 심각한 사회 분위기에서 벗어나려는 듯 밝고 가벼운 것이 인기”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화이트 룩이 모든 사람들에게 어울리는 것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자신의 체형, 얼굴 형태 등을 꼼꼼히 따져 스타일을 연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체격이 큰 사람의 경우 퓨어 화이트 스타일이 오히려 큰 체격을 부각시킬 수 있어 레이어드(겹쳐 입기) 스타일을 하거나 자신 없는 부분에 중성색 아이템으로 가려주며 연출하는 것이 좋다. 또 화이트 룩은 자칫 얼굴을 커보이게 할 수 있으므로 선글라스로 중심을 잡아주는 것도 괜찮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